[특파원 칼럼/이승헌]대통령의 취미 생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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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골프 한번 쳐야죠. 내가 또 질 수도 있겠지만….”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에 상하 양원을 내주며 참패한 다음 날인 5일(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 기자회견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사안에 따라 공화당과 협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화 제스처의 하나로 공화당의 실력자 베이너 의장에게 골프 라운딩을 제안했다. 선거 완패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은 까칠해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골프 이야기를 꺼냈으니 그의 ‘1호 취미’는 역시 골프라는 점이 공개적으로 재확인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골프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다. ‘정글’ 같은 워싱턴 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존재라는 게 측근들의 말이다. 그가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일각의 비판에도 꿋꿋하게 골프를 치는 이유다. 오바마 대통령은 8월 20일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했을 때도 엄숙한 표정으로 애도 성명을 내고서는 골프장으로 향했다. 최측근인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는 부임 전 기자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현실의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골프를 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외 많은 지도자들은 자신만의 취미를 갖고 있다.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취미로 그림 그리기’라는 에세이까지 썼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그림을 그렸다. 쿠바의 혁명 영웅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등 남미에서 반정부 게릴라전을 지휘하면서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막사 옆 풀밭에서 시가를 물고 골프채를 휘둘렀다.

한국 대통령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칠 전 총리처럼 그림이 취미였다. 풍경화 초상화를 가리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조깅 마니아였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테니스를 쳤다. 테니스를 친 뒤 운동복 차림으로 종종 청와대 춘추관에 들렀던 이 전 대통령은 기자에게 “설렁설렁 치다가 나에게 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다. 적어도 취임 전엔 그랬다. 테니스도 자주 쳤고 국선도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다. 피아노도 쳤다. 박 대통령은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기자가 자택을 방문했을 때 손때 묻은 독일제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피아노를 직접 연주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요즘 때아닌 여성 헬스트레이너 고용 논란에 휩싸였다. 배우 전지현의 ‘S라인’을 만든 유명 트레이너 윤전추 씨가 대통령제2부속실에서 민원담당 3급 행정관(국장급)으로 근무 중인데 실제로는 대통령 트레이너가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윤 행정관의 정체를 물었지만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이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변해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 야당의 묻지 마 식 대통령 때리기도 문제지만 대통령 관련 사항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감추려 드는 청와대의 고질적 불통 행태가 낳은 또 다른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업무는 고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결정의 순간을 맞는다. 어떤 식으로든 잠시 재충전할 수 있는 탈출구는 대통령 개인의 취미 차원을 넘어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도 필요할 수 있다. 청와대가 ‘대통령께서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김기춘 비서실장·지난달 28일 국정감사)한다고 밝혔는데, 임기 5년이라는 ‘마라톤’을 내내 100m 전력 질주하듯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만간 청와대가 윤 행정관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으면 좋겠다. 설령 윤 행정관의 도움을 받아 박 대통령이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한들 그게 비밀일 필요가 있겠는가.

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대통령#취미#오바마#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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