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超국가적 세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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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국가/지그문트 바우만, 카를로 보르도니 지음/안규남 옮김/298쪽·1만6000원·동녘

2011년 10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벌인 ‘반 월스트리트’ 시위. 금융자본의 이기적 행태를 규탄한 이 시위는 뉴욕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번졌다. 동아일보DB
2011년 10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벌인 ‘반 월스트리트’ 시위. 금융자본의 이기적 행태를 규탄한 이 시위는 뉴욕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번졌다. 동아일보DB
#1. 고도성장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IMF 세대’와 같은 비운의 세대는 없을 것이다. 이전 부모 세대가 높은 고용률과 부동산 투기의 달콤한 혜택을 누린 반면 이들은 이름도 생소한 IMF 구제금융의 후폭풍을 맞아 청년실업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필자는 학과 사무실에 쌓여 있던 입사추천서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각종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이 ‘올 스톱’된 기억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찬바람이 쌩쌩 불던 대학가였다.

#2. ‘Occupy Wallstreet(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이후 뉴욕 금융가 월스트리트에 평범한 사람들이 몰렸다. 이들은 자신의 실업 혹은 경제적 어려움이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자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내건 ‘1%의 탐욕에 맞선 99%의 저항운동’ 슬로건은 많은 미국인의 공감을 끌어냈다.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두 가지 살풍경한 장면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가가 아닌 거대한 세력 내지 외생 변수가 일반인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었다는 점이다. 또 사태의 전말이 개별 국가가 아닌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면서 이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철저히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1930년대 케인지언에 입각해 과감한 공공사업으로 대공황을 타개한 구원자로서의 국가는 과연 어디로 사라졌는가.

저자들은 이 원인을 ‘권력 없는 국가’에서 찾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따른 탈규제와 민영화, 권한 이양이 국가와 권력의 분리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과거라면 국가가 응당 행사해야 할 권한을 금융자본 같은 초국가적 세력들이 대신 차지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문제는 이들이 아무런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이익집단이라는 것. 이로 인해 일반인의 이익이 침해되는 건 물론이고 삶이 위기로 치달을 개연성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문제는 국가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를 능가하는 시장 중심주의가 공동체적 유대마저 파괴한다. 금방 출시된 상품을 얻기 위해 기존의 것을 손쉽게 버리듯 물질적 소비주의의 대상이 인간관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들은 경고한다.

‘위협받는 것은 정치와 공동체의 생존만이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친목, 거기서 얻는 만족감과 성취감도 소비주의적 세계관 앞에서 위험을 맞이하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위기의 국가#고도성장기#월스트리트#글로벌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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