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66>연애 유목민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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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목민 시대의 남녀 유행어 중에 ‘썸탄다’는 말이 있다. 서로 호감은 있으나 연인까지는 발전하지 않은 애매한 상태를 일컫는다. 둘 사이에 ‘뭔가(something)’ 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썸탄다의 본질은 간보기다. 친한 사이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려는 순간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섞이기 마련이다.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전문가들은 썸타는 남녀의 심리를 ‘불안한 세대의 방어심리’로 분석한다. 사랑에 실패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상처를 회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책임감에서 자유롭고 싶은 요즘 남성들의 특성도 한몫한다. 사랑을 이루는 성취감은 기대하지만 책임과 의무감의 부담은 피하려고 한다.

여기에 밀고 당기는 연애를 좋아하는 여성 특성이 결합되면 더할 나위 없는 ‘썸남 썸녀’ 조합이 탄생한다. 여성은 썸남의 속마음을 수시로 간을 보며 이뤄질 듯 말 듯 긴장감 넘치는 관계 놀이를 즐긴다. 그들에게는 연애 ‘밀당’이야말로 도파민의 흥분과 즐거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최고의 게임이다.

썸타는 선을 넘어서기 위해선 고백이 필수적이다. 한 인터넷 회사가 미혼 여성 28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썸남과 남자친구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가장 많은 수가 ‘고백’(61.6%)을 꼽았다.

고백을 둘러싼 썸녀와 썸남 간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도 벌어진다. 여성들은 썸남 앞에서 다른 남자 얘기를 꺼내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메시지 답장을 바로 해주지 않는 수법으로 고백을 압박한다. 일부 썸남 역시 연락을 잠시 끊거나 문자에 답을 주지 않음으로써 썸녀의 애간장을 타게 만든다. 자기 마음은 방패 뒤로 숨긴 채 기다란 창끝으로 상대를 콕콕 찔러 투항을 권유하는 셈이다.

어떤 여성은 썸타기를 ‘일단 킵(keep)해두기’로 활용한다. 구속력 없는 느슨한 관계이므로 한 명이 아닌 여러 남자와 자유롭게 썸타는 것이다. 그렇게 ‘어장관리’를 하면서 여러 남자와 연인도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가며 그들의 관심을 하나하나 즐기기도 한다.

썸타기는 열린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이도 저도 아닐 수도 있다. 썸타는 데는 이런 마음도 깔려 있다.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 그러니까 아직은….”

그들이 너무 일찍 세상 물정의 ‘빠꼼이’가 되어서일 수도 있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썸타기는 유목민의 심성이기도 하다. 정착 가능성도 배제 못하지만 더 나은 목초지를 발견하면 주저 없이 이동한다. 바야흐로 연애에도 유목민 시대가 열린 셈이다.

한상복 작가
#사랑#연애#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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