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훈]스키장 잔혹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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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1974년 12월 한국 겨울스포츠의 역사가 새로 쓰였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던 강원 평창군 도암면(현 대관령면)에 국내 첫 현대식 스키장인 용평리조트가 문을 열었다. 무거운 장비를 메고 1시간 동안 언덕을 올라 1분간 내려오는 게 스키인 줄 알았던 당시에 리프트를 타고 산에 올라 스키를 탄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먹고살기 빠듯했던 1970년대, 스키장 사업을 주도했던 이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당시 전무)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스키를 배운 그는 일본에서 직접 스키장 전문가를 데려오고 해외 차관을 얻어 제설기를 들여올 정도로 스키장에 애정을 쏟았다.

20년 넘게 스키장을 가꿨던 김 전 회장은 1997년 리조트를 매물로 내놨다. 외환위기로 쌍용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용평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것이다. 채권단은 “쌍용이 안 팔면 우리가 직접 팔겠다”고 압박했다. 오너가 가장 아끼는 것을 내놔야 시장이 구조조정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용평리조트에서 시작된 ‘스키장 잔혹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북 무주리조트를 개발했던 쌍방울은 1998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하면서 스키장을 내놔야 했다. 이를 인수한 대한전선 역시 자금난으로 재매각에 나섰다. 기업재무구조 개선(워크아웃)에 들어간 현대시멘트는 성우리조트를 처분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오투리조트(강원 태백시)와 알펜시아리조트(강원도)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스키장 사업의 흥망성쇠는 경기 사이클과 궤를 같이한다. 국내에 스키장이 대거 문을 연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중반은 경제위기 직전, 경기가 꼭짓점을 찍던 시기다. 일본은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1700여 개에 달했던 스키장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렇게 어려운 스키장 사업에 북한이 관심을 쏟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장성택 숙청 직후 찾은 곳이 강원 원산의 마식령 스키장 공사 현장이었다는 점을 보면 그 관심의 강도를 알 수 있다.

북한은 마식령 스키장을 세계적 위락단지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매년 6000만 달러 넘는 매출을 거두겠다는 계산도 내놨다.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 계획일까. 북한이 공개한 마식령 스키장 계획도에 따르면 스키장 완공 시 총 슬로프 수는 9면이다. 국내 최대라는 용평리조트(28면)의 3분의 1이다. 연간 6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려면 하루 평균 5000명의 손님을 끌어들여야 한다. 용평의 하루 평균 입장객이 3300명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수도권 배후인구 2500만 명에 한류 바람을 타고 온 해외 관광객까지 더해져 나온 숫자다

국내에서 보면 스키장 사업으로 어려워진 회사(지자체)들의 공통점이 있다. 오너(단체장)의 애정이 각별했고, 수익성을 너무 낙관했으며, 외부환경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북한이 이런 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길 바란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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