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화학물질등록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0일 03시 00분


2015년부터 시행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따르면 신규 화학물질은 모두, 기존 화학물질은 연간 1t 이상 제조할 경우 환경부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제조 및 수입량이 연간 100t 이상일 경우 위해성(危害性) 평가도 받아야 한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발의한 화평법은 신규 또는 기존 화학물질을 연간 1t 이상 제조하거나 수입할 경우에만 등록할 것을 의무화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신규 화학물질까지 모두 환경부에 등록하도록 바뀌었다.

화학물질을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데 이의는 없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불산 누출사고와 LG화학 청주공장의 유기용제 폭발사고, SK하이닉스의 염소가스 누출사고, LG실트론의 불산혼합액 누출 사고, 포스코 고열 코크스(고체연료) 유출 사고를 되돌아보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4월에 국회를 통과한 화평법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화평법의 모델인 유럽연합(EU)에서도 연간 1t 이하의 신규 화학물질은 등록을 면제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연간 사용량이 0.1t 이하이거나 연구개발(R&D)에 쓰는 신규 화학물질은 등록을 면제했지만 화평법에 따르면 모두 등록해야 한다. 지난해 수입량이 연간 0.1t 이하여서 등록을 면제한 건수는 3만5000여 건이다. 화평법은 모든 화학물질을 위해물질로 간주하는 것이어서 기업이 불평할 만하다. 신규 화학물질을 등록하려면 보고서 준비에 8∼11개월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찮다고 한다. 기업 비밀이 노출될 우려도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그제 인천지역 중소·중견기업을 방문한 자리에서 “환경분야의 불합리한 규제가 기업 활동에 애로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며 시행령에 재계의 우려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법안 처리 때는 미적대다가 뒤늦게 기업 달래기에 나서는 듯해 미덥지 못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그제 발표한 ‘미일 제조업경쟁력 강화전략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1년 2분기 이후 여덟 분기째 미국 제조업 수익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규제로 기업 활동을 옭아매면 경제가 힘들어진다. 화평법도 취지는 살리되 기업을 옥죄는 규정은 현실에 맞게 고쳐야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환경부#신규 화학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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