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복도 담배연기 자욱… 아이들 간접흡연에 무방비 노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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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자주 찾는 공중시설 ‘불법 흡연’ 심각

9일 대구 북구 고성동 시민운동장 야구장의 내야 관중석 바깥 복도는 금연구역인데도 흡연자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한 여자 어린이가 흡연자들 옆을 지나가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9일 대구 북구 고성동 시민운동장 야구장의 내야 관중석 바깥 복도는 금연구역인데도 흡연자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한 여자 어린이가 흡연자들 옆을 지나가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삼촌, 사람들이 야구장 복도에서 고기 구워 먹어요?”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 팬인 김기홍 씨(26)가 대구 북구 고성동의 시민운동장 야구장에 야구를 보러 갈 때마다 조카 김지훈 군(6)에게 듣는 질문이다. 경기 중간 중간에 흡연자 수십 명이 몰려나와 내야 관중석 바깥 복도를 채우고 담배 연기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연기가 가득 찬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관중 1000명 이상인 실외체육시설에 해당돼 흡연구역을 따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공간이 비좁은 탓에 지정된 흡연구역을 따로 두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흡연자가 바깥 복도, 화장실, 출입구에서 마음대로 담배를 피운다. 이들 곁을 지나다니는 어린이들이 간접흡연에 그대로 노출되는 셈이다.

PC방 음식점 카페 등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이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흡연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전국의 주요 공중이용시설에서는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는 이용객이 많다.

본보 취재진이 7월 말∼8월 초 확인해 보니 야구장이나 도서관처럼 어린이가 자주 찾는 일부 시설에서 흡연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거의 모든 업소에서 전면 금연을 잘 준수하고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7월 30일)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잠실야구장은 흡연공간을 5군데나 마련했지만 아무데서나 담배를 꺼내 무는 ‘막무가내 흡연’은 마찬가지였다.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린 8일 잠실야구장 1루 쪽 3층 상단 관중석에서 LG 팬을 자처하는 이모 씨(28)가 담배를 피웠다. 실외체육시설의 관중석과 통로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국민건강증진법은 실종된 상태였다. 이 씨 주변에는 LG 유니폼을 입은 어린이 서너 명이 뛰어놀고 있었다.

취재진이 “왜 관중석에서 담배를 피우느냐”고 묻자 이 씨는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느냐”며 화를 냈다. 그는 “이렇게 넓은 구장에서 담배 한 개비 피우는 건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 명이 함께 담배를 피우면 안내요원이나 단속반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방학 중 어린이가 많이 찾는 도서관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8일 서울 종로구 A도서관 건물 뒤쪽 한구석에서는 성인 2명이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말을 붙이려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황급히 사라졌다. 이날 유치원 교사와 함께 도서관을 방문했다는 전모 군(6)은 “오늘 도서관에 오니까 담배 냄새가 많이 났다. 담배 연기를 맡을 때마다 무슨 맛일지 궁금하다”며 강한 호기심을 보이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단속 기관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복지부는 직접적인 흡연 단속 권한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지자체의 단속 인력 및 예산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복지부가 단속에 수시로 나서거나 지자체에 국비를 더 지원하는 건 법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흡연 단속을 위해 더 많은 국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관리하는 대구시청의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인력 부족으로 현장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끄라고 직접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잠실야구장을 담당하는 서울 송파구 보건소 관계자는 “관내 공중이용시설이 5000여 개에 이르지만 단속 인원은 겨우 2명에 불과하다. 인력 확충을 위한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어린이가 자주 찾는 공공시설에서의 불법 흡연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법학)는 “어린이의 건강권은 어른의 흡연권보다 중요한 기본권”이라며 “최소한의 흡연구역 마련과 함께 강력한 단속과 금연교육을 병행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권승록 인턴기자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오신혜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야구장#담배연기#간접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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