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민화의 세계]삼국지연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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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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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영웅들을 우스꽝스럽게 ‘강등’ 시킨 해학

‘삼국지연의도’ 중 하나인 ‘자룡단기구주’(채용신·1912년), 비단에 채색, 183×169cm,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홀로 말을 타고 주인의 아들을 구하는 조자룡의 용맹한 모습과 말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목이 베인 적장의 모습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삼국지연의도’ 중 하나인 ‘자룡단기구주’(채용신·1912년), 비단에 채색, 183×169cm,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홀로 말을 타고 주인의 아들을 구하는 조자룡의 용맹한 모습과 말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목이 베인 적장의 모습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우리 역사 속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지만, 그 실체를 아는 이가 별로 없는 종교가 있다. 바로 관우신앙, 즉 촉(蜀)나라 명장 관우(關羽)를 신으로 섬기는 민간신앙이다. 중국인과 화교들이 신봉하는 덕분에 세계에서 신도가 가장 많은 종교 중 하나지만, 우리에겐 낯선 존재다.

관우신앙은 임진왜란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명나라 장수들이 일본을 물리치는 원조의 조건으로 관우의 신전인 관성묘(關聖廟·관왕묘라고도 함)를 전국에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고, 조선 조정은 이를 받아들였다. 관성묘에는 관우를 비롯해 그의 심복인 주창(周倉)과 아들인 관평(關平) 등의 신상이 모셔졌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삼국지연의도’도 여기에 봉안됐다. 관성묘에 있는 삼국지연의도는 단순히 이야기 그림이 아니라 관우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예배화’였다.

구국을 염원한 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

초상화로 유명한 채용신(蔡龍臣·1850∼1941)은 일제강점기 초기였던 1912년 관성묘에 봉안할 삼국지연의도를 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임진왜란 때 관우의 신통력으로 왜군을 물리친 것처럼, 삼국지연의도를 통해 일제에 의해 쓰러진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바랐던 듯하다.

강원 영월군 조선민화박물관은 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 8폭을 소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도원결의’(桃園結義·유비, 관우, 장비가 복사꽃이 만발한 동산에서 형제의 의를 맺고 한나라 왕실을 함께 구하기로 맹세한 일)나 ‘삼고초려’(三顧草廬·유비가 천하를 평정하기 위해 제갈량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방문한 일)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장면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6폭에는 흡사 ‘기적’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룡단기구주(子龍單騎救主)’는 조자룡이 말 한 필에 의지해 유비의 아들인 아두(阿斗)를 적진에서 구하는 무용담을 그렸다. 놀랍게도 어린 아기를 품에 안은 조자룡은 겹겹이 둘러싼 조조군의 포위망을 혼자 힘으로 뚫어내고 있다. 그의 용맹성이 태양처럼 빛나는 장면이다. 조선 재건의 기적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만큼 표현 방식도 매우 강렬하면서 극적이다.

채용신은 위정척사나 항일 지사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단순한 인물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민족사상에도 심취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하기에 채용신이 삼국지연의도를 그리게 된 배경에는 민족의식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국지도’(20세기 전반), 종이에 옅은 채색, 33×76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장판교 위 장비나 그 아래의 조조와 하후걸 모두 세련미가 전혀 없는 투박한 선을 활용해 해학적으로 표현돼 있다.
‘삼국지도’(20세기 전반), 종이에 옅은 채색, 33×76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장판교 위 장비나 그 아래의 조조와 하후걸 모두 세련미가 전혀 없는 투박한 선을 활용해 해학적으로 표현돼 있다.
삼국지연의는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임진왜란 직후 관우신앙과 함께 전래된 이 소설에 대해 초기에는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내용이 많은 책”이란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집집마다 이 책이 있었고, 그 내용이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중국보다 우리나라에서 삼국지연의가 더 유행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였다. 오늘날에도 삼국지연의는 소설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 게임 등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그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 배경을 둔 민화는 관성묘에 봉안된 그림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신전에 모신 예배화도 아니거니와 구국의 염원과도 거리가 멀다.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기 그림일 뿐이다. 이 때문에 등장인물들도 엄숙하지 않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민화 ‘삼국지도’에서는 장비(張飛)가 장판교(長坂橋) 위에서 고리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에 장팔사모를 움켜쥔 채 위세를 부리고 있다. 의심이 많은 조조(曹操)는 말을 타고 급히 달려왔으나 다리 부근에 있는 무기와 깃발 등을 보고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눈치 챈 장비가 우레와 같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조조 곁의 하후걸(夏侯傑)은 간담이 서늘해져 말 아래로 고꾸라지고 만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든 간에 한결같이 우스꽝스럽게 표현됐다. 이는 지나치게 이상화한 영웅보다 자신들처럼 평범하고 친근한 캐릭터를 원하는 서민의 세계관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민화 작가들이 추구한 삼국지의 세계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민화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영웅호걸들의 기상이란 온데간데없다. 그들은 우리처럼, 아니 우리보다 못한 존재로 격하된다. 민화 작가들은 나관중이 묘사한 영웅들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각색했다. 용을 뱀으로, 봉황을 닭으로, 또 호랑이를 고양이로 표현하듯이 중원을 호령하던 삼국지의 영웅들을 우리처럼 평범한 존재로 내려앉혔다. 그것도 웃음을 통해서 아주 간단하게 말이다. 적어도 민화의 세계는 불필요한 권위의식을 용납하지 않고 평등을 추구한다. 그것이 민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소리 없는 메시지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문화재학)·한국민화학회 회장 amkakh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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