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검찰총장이라는 자리

  • 입력 2009년 7월 31일 22시 00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검찰이 70일째 불안정한 상황에 빠져 있다. 검찰총장 자리는 59일째 공석이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돌연 사퇴와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총장 낙마에 이어 새로 내정된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이 다시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검찰총장의 일시적 부재(不在)가 곧 검찰 기능의 올 스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징적 존재라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형사사건이 아닌 정치적 사건을 수사할 때는 달라진다. 검찰총장은 정치권력의 외풍(外風)을 막는 중책을 감당해야 한다. 검찰총장의 자격요건에 대한 확립된 정답은 없지만 임, 천, 김 3명을 둘러싼 논란을 잇달아 지켜보면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검찰위기, 임채진 전 총장에 原罪

작금의 검찰 위기는 임 전 총장이 씨를 뿌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PK(부산 경남) 출신이라는 점 외에 노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노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적절치 못한 처신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신을 검찰총장에 앉혀준 은인(恩人)이라는 사적(私的) 감정에 스스로 지나치게 얽매인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숨진 당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의 사표는 “지금은 사태 수습이 우선이다”는 이유로 반려됐지만 박연차 사건 최종수사결과 발표(6월 12일)를 9일 앞둔 6월 3일 다시 사표를 제출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사퇴의 변(辯)’을 통해 검찰 수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국민에 대한 사죄’를 했다. 또 “인간적 고뇌로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검찰총장으로서 그의 행동은 무책임했다. 인간적 도리를 생각했다면 노 전 대통령을 본격 조사하기 전에 사표를 냈어야 옳다.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을 지켜보고, 조사 후 3주일 이상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다 비보(悲報)를 들었다. 결국 개인적 감정에 치우쳐 검찰 수장(首長)의 중책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의 중도 사직과 ‘국민에 대한 사죄’ 표명은 검찰 수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에 큰 흠집을 냈다. 장기간의 수뇌부 공백도 불렀다. 게다가 ‘정권이 노(盧)에 대한 표적수사와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일부 세력의 정략적 공세에 손을 들어준 꼴이 됐다. 기자간담회에서는 청와대와 법무부의 정치적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도 했다. 자신의 외풍 차단 책무는 외면한 채 외풍 탓만 한 셈이다.

代打김준규 후보에 또 초긴장

후임 총장 내정자로 발탁된 51세의 천 씨는 어떻게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올랐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흠투성이였다. 28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조금 아는 사업가’에게 15억5000만 원을 빌린 것 외에 부부동반 해외골프 여행을 함께하고 면세점에서 명품 핸드백을 구입했으며 아들의 호화 결혼식과 부인용 고급 승용차 리스 관련 의혹도 숨기고 거짓말까지 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및 독립과 개혁 실천 의지도 굳건하지 못했다.

새로 내정된 김 전 대전고검장도 인사청문회 통과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승마 요트 열기구 등 평범치 않은 취미 생활 때문에 ‘귀족 검사’ 논란에 휘말려 있다. 이런 꺼림칙한 대목에 대해 어떻게 해명할지가 관건이다. 그 자신은 “백옥같이 희지는 않겠지만 큰 잘못은 없다”고 변호하고 있다.

검찰을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임, 천, 김 3명 모두 공교롭게도 전통적인 수사통이 아니다. 기획통, 공안통, 국제통 등으로 분류된다. 투 아웃의 위기 상황에서 대타(代打)로 나선 김준규 선수가 과연 안타를 치고 나가 검찰팀을 구할 수 있을지에 관중의 눈이 쏠려 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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