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오공단]한국은 북핵이 안 무섭습니까?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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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선배이자 핵확산금지조약의 전문가인 지인이 한 시간 동안의 면담을 요청해 왔다. 동북아시아의 핵 확산 금지를 연구하기 때문에 한국 역사와 문화를 좀 더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물들을 보면 일본은 미국이 제공하는 더욱 확대된 핵우산 보호를 선호하나 한국 관계 자료에는 그런 내용이 거의 전무했다고 그는 말했다. 더욱이 북한이 2006년 10월에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핵실험을 한 이후에도 한국인이 북한의 핵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종의 체념주의나 운명론적 모습만 보일 뿐 한 점의 변화가 없다고 했다. 그의 질문은 간단했다. “왜 한국은 북한 핵을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문화의 차이 때문일까요?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요?”

간결하고 시원한 대답을 줄 수 없었다. 뜸을 들여 생각한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제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쌀-비료 받고 설마…” 하겠지만

첫째, 조선왕조 말기부터 5·18민주화운동까지 지속되는, 100년에 걸친 한반도의 역사는 한민족을 강인한 생존자로 만들면서 웬만한 일에는 과도한 반응을 보이지 않게 했다. 핵실험이 한반도를 갑자기 불바다로 만들지 않았고 지축을 흔드는 변화도 아니었다.

나는 9·11테러 직후 워싱턴 주재 각국 외교 공관을 방문해 그들의 사태 대응에 대한 조사 결과를 그에게 들려줬다. 미국 국무부 백악관 국방부 의회 등 중요 기관이 삼엄한 경비와 순시에 들어간 반면 한국대사관은 아무런 특별 경비가 없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일본대사관 앞에 미국 해병대가 장총을 들고 서 있는 풍경과 큰 차이를 보였다. 같이 조사를 나갔던 미국 동료가 한국 무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 테러리즘에 하도 시달리며 살아온 터라 이런 정도는 별로지요”라고 대답했다. 우리 모두 웃었다.

둘째, 핵은 총이나 칼과는 달리 추상적인 개념 속의 위협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長崎)와 히로시마(廣島)에서의 핵폭발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리 소름끼치는 핵이라 할지라도 추상적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셋째, 미국의 핵은 전쟁 마지막 순간까지 안간힘을 쓰면서 굴복하지 않으려는 일본을 누르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무시무시한 사용 결과를 확인한 핵 과학자는 그들의 창조물이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괴물이 될 가능성을 감지하고 몸서리쳤다. 북한이 설마 동족을 이런 무기로 죽일 수야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일반 한국 국민의 정서다.

넷째, 한국의 대북정책은 조건을 달지 않은 인도적 지원과 경제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지난 10년간 계속됐다. 쌀 비료 의약품 농기구 트럭 자동차 컴퓨터 등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간 물량과 도움은 방대하다. 한국 쌀을 먹은 북한 지도자가 그야말로 남을 괴롭히는 일이 천직인 괴물 같은 인간이 아니라면 배고픈 동족에게 쌀을 넘겨준 한국을 향해 전쟁하자고 달려들지 않을 거라는 해석 때문이다.

다섯째이자 마지막으로, 북의 핵무장의 전략적 의미와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한국 내의 전문가가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 않고 있으며 국가 장래를 내다보고 머리를 써야 할 지도자의 자질이 약하기 때문이다.

설명을 들은 전문가가 유익한 대화였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대북 국가 전략은 북한 핵실험 이후 어떤 변화가 있느냐고 물었다. 더 어려운 질문이었다. 할 말이 별로 없었고 머리가 지근지근 아팠다.

대북전략 장기적 국익 따져야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그리고 변함없는 군사 전략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사회 정치적 통제를 계속하고 핵 보유 국가로 가는 길을 택했다. 한국 국민이 북한 핵을 무서워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핵을 가진 국가와 국경을 접하는 나라로서 과연 어떤 정치 외교 군사 경제 전략이 한국의 장기적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철저히 따지고 모색해야 할 시기다. 개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옛말의 깊이를 재야 할 때다.

오공단 미국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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