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청문회만 넘기고 보자?

  • 입력 2006년 2월 8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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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한 살 젊은 시절에는 폭이 좁고 편협했다.”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던 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실. 이 내정자는 ‘통일은 제국주의 세력을 이 땅에서 축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라는 내용의 1988년 9월 ‘사회와 사상’ 기고문이 (북한식의) 민족해방론에 입각해 쓴 것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이같이 해명했다.

1980, 90년대 대학가에서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 이 내정자의 논문처럼 ‘북한을 고립시키는 분단올림픽 반대’ 같은 극단적 주장이 유행했던 게 사실이다.

그 시대에 쓴 글을 놓고 무조건 ‘친북좌파’로 몰아붙이고, 이후 인식의 변화와 발전 여부를 살피지 않는다면 편협한 이념공세일 수 있다.

그러나 민족의 명운이 달린 통일문제를 다루는 장관, 더욱이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내정자라면 얘기는 다르다. “그때는 생각이 좁았다”는 한마디로 모든 과거가 해명될 수 없다. 과거엔 왜 그랬으며, 지금은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국민 앞에 소상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 NSC 사무차장 당시 ‘북한을 이해하는’ 정책을 고집해 한미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내정자가 청문회에서 보인 태도는 당당하지 못하고 모호한 대목이 많았다. 그는 ‘우리 현대사에서 최초로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선언하고 주체 확립의 기치를 내건 지도자는 김일성’이라는 내용의 ‘역사비평’ 논문을 쓴 이유에 대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흐렸다.

또 1995년 자신이 쓴 책 ‘현대 북한의 이해’에 나오는 ‘(6·25전쟁 당시) 북한의 대부분 지역이 유엔군에 의해 유린당했다’는 대목에 관해서는 “어떻게 썼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게 썼다면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고 얼버무렸다.

북한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비교적 뚜렷한 논리로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대북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온 그에게서 책임 있는 외교안보정책 총괄조정자로서의 자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감할 수 있는 소신과 비전을 내놓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장관이 되기 위해 청문회만 넘기고 보자는 식의 ‘전술적 몸사리기’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했다.

박성원 정치부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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