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용덕]장차관급 늘린만큼 성과도 느나

  • 입력 2005년 8월 25일 0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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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노무현 정부가 임기의 절반을 새로이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전반기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와 아울러 후반기에 해야 할 일에 관한 대안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주요 논제 가운데 하나는 ‘정부의 적정 규모’에 관한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반 동안 정부 규모가 양적으로 크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과 지방을 합한 전체 행정부 인력이 계속 늘어나 2004년 말 현재 91만1764명으로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1997년 말 현재 91만7641명)과 비슷한 규모가 됐다. 장차관급은 당시 101명에서 현재 126명으로 7년 반 동안에 25명이 늘었다.

이처럼 공공부문의 확대가 이뤄지고 있는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라 장애인과 여성 등 그동안 소외됐던 계층의 행정서비스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교사 대 학생의 비율을 낮추는 등 각종 행정서비스의 질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도 날로 높아져 왔다.

공급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민주화에 따라 선거경쟁이 훨씬 더 중요해진 정치 환경이 펼쳐지면서 유권자들의 행정서비스 욕구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책결정자들이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고위직 증설에 하나의 원인을 제공한, 복수 차관제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올해 초 국회의 1차 심의에서 부결된 주된 이유가 ‘왜 일부 부처에만 신설해 주는가’라는 의원들의 이의 때문이었다는 후문이 한 예가 될 것이다.

행정기구의 확대와 그로 인한 고위직 증설도 민주화에 따른 현상이다. 사회부문이 다원화되면서 다양한 선호와 의제들이 고루 다뤄지도록 하기 위한 정부 내 교두보로서 행정기구의 다원화가 촉발되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하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국가 기구들에 대한 오랜 국민적 불신이 그들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유도하기 위한 유사 병렬기구들의 증설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부·처·청 사이에도 수장의 직급에 따라 서열이 매겨져 대등한 정책 협의가 어려운 행정적 비민주성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궁여지책이 결국 모든 수장의 직급을 장차관급으로 상향 조정하게끔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있었던 정부 규모의 감축은 1980년대 후반 민주주의 이행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정부 성장 추세에 유일한 예외가 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외환위기 상황에서 위축된 국민적 정서와 국제통화기금(IMF)이 신자유주의 모델에 따른 정부 감축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기에 서구에서 이미 경험한 ‘민주화에 따른 정부 성장’이라는 일반이론과는 달리 외환위기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당시 구조조정이 단행됐기 때문에 오히려 후임 정부 시기에 와서 반사적으로 정부 성장 수요가 더 폭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행인 것은 한국이 아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일본과 더불어 전체 고용인 수에 대한 공무원 수의 비중이 10% 이하로 가장 ‘작은 정부’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부 규모의 확대를 최대한 억제하려는 노력은 계속 필요하다. 일단 커진 공공부문의 규모를 다시 줄이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화라는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긴 해도 정부 성장을 초래한 것은, 특히 고위직 인력의 확대를 막지 못한 것은 노무현 정부에 하나의 정치적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이 정치적 부담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결국 정부 성과의 증진뿐이다. ‘일꾼’을 더 쓴 만큼 소출도 더 늘려야 하는 이치다. 임기 후반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노무현 정부의 우선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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