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배극인]양대노총 ‘국익위해 자기 살을 베라’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코멘트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지역 총회가 시작도 하기 전에 심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그 진원지는 손님을 맞이해야 할 한국이다.

이번 총회는 지역회의라고는 하지만 43개국 600여 명의 정부 및 노사단체 대표를 포함해 각종 국제기구 대표가 대거 참석하는 매머드 국제행사다. 한국으로서는 ‘파업 공화국’ ‘강경 노조 vs 노조 탄압’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와 함께 이번 행사의 또 다른 주역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정부의 노동정책에 반발해 총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ILO에는 개최지 변경 요구를 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태지역 노동계와 연대해 장외투쟁을 벌이겠다는 방침까지 정했다.

총회를 코앞에 두고 ‘봉변’을 당한 ILO는 양대 노총 위원장에게 공문을 보내 “국내 문제를 총회 개최와 연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 정부에도 “원활한 총회 개최가 보장되지 않으면 총회 자체를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자칫하면 정부와 노동계 모두 국제적 망신을 당할 위기에 몰린 셈이다.

ILO 지역 총회 참석 여부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노동계가 더욱 잘 알고 있다. 양대 노총 위원장은 ILO 총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ILO는 노사정 3자 간의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국제노동기준을 제정하는 한편, 각국의 정부가 이를 준수케 해 우리 사회의 약자인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통합적인 노사관계의 발전을 도모해 왔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양대 노총은 “국익을 위해 ‘자기 살을 베는 심정으로’ 총회에 불참한다”고 선언했다. “엉망인 집안에 손님을 초청하는 정부가 더 잘못됐다”는 논리다.

정부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대 노총은 이번 총회 참석이 근로자 대표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점을 잊은 듯하다. 더구나 이번 총회의 의제는 아시아 각국 노동자에게 더욱 절실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양대 노총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해 본다.

배극인 사회부 bae215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