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인호]국제교류재단이 서울을 떠나면

  • 입력 2005년 7월 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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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이전이 확정된 공공기관의 이름들이 저녁 뉴스에 나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을 제주도로 옮긴다고? 하지만 내 귀는 정확했고 무참히 무너진 것은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걸었던 기대와 신뢰였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되도록 막고 지방 간 균형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다만 사회기관들이란 허물고 옮겨 지을 수 있는 벽돌집 같은 것이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있은 후 다시 시작된 공공기관 이전 논의는 정당들을 거의 분열시키다시피 했을 정도로 찬반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일이었다. 그러니만큼 이전 기관, 이전 지역, 이전 시기를 구체화하는 일에는 국익 전반이라는 포괄적 관점에서 신중한 검토와 관계 당사자들 사이의 충분한 협의가 선행되어야 했다.

다른 기관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만 4년간 그 기관을 책임졌던 사람으로 내가 잘 알고 있는 국제교류재단의 경우에 한정해 말하기로 하겠다. 결론부터 말해, 제주도 이전으로 말미암아, 제주도가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또 국제 교류 활동이 차질을 빚지 않을 수 있을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제교류재단은 우리나라와 중요한 관계를 가진 나라들의 주류사회에 한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우호적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중장기적 안목에서 국가 이익을 도모하는 고도의 전략적 문화외교기관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창구이다. 재단사업의 대부분은 외국 기관들과 긴밀한 협동 속에서 외국 현지에서 벌어지거나, 아니면 재단의 초청에 따라 한국을 방문하여 각기 관심 분야를 돌아보며 관계자들을 만나는 외국 인사들을 상대로 하게 된다. 따라서 수도권과 국제공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기관을 굳이 수도권 밖으로 이전시키겠다니 그 결정이 재단사업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표밭을 갖지 못한 기관이니 홀대해도 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더욱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책 결정 과정의 허술함이다. 사람에게 벌금형만 부과하려고 해도 원칙적으로는 본인의 진술을 듣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 이전 결정은 해당 기관은 거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진 모양이니,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모르겠다.

언론조차도 결정에 대한 평가를 ‘이전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에게 떨어질 경제적 떡고물의 크기’에 따라 환영 또는 실망하는 것을 기준으로 내리는 듯하니 이 땅에서는 이제 위인설관(爲人設官)이나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상식으로 정착해 버린 것인가. 그런 논리에 빠져든다면 정작 필요한 공공기관들의 군살빼기 구조조정 같은 일은 생각도 하기 힘들 것이다.

공공기관은 그마다 설립 목적이 있다. 저비용 고효율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는 부수적인 것이다. 직원들이 서울에 수시로 드나드는 데 필요한 추가 경비와 이전 비용 지출이 제주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떼어 제주도에 주는 것이, 70명의 정원으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직원들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외국의 상대들에게도 불편을 줌으로써 교류사업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세계적 관광지 제주도에 대해서는 그곳에 걸맞은 기관들을 이전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인들이 다같이 나서서 이러한 무분별한 결정을 철회하는 책임감과 용기를 보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바란다. 나라의 주인은 오늘을 살고 있는 유권자들 모두일 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이룩하고 지켜 온 선열들과 앞으로 주인이 될 자손만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전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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