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희곡/떨림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선물

  • 입력 2003년 12월 31일 16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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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경기 이천 출생 △2001년 명지대 철학과 졸업 △현재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1969년 경기 이천 출생 △2001년 명지대 철학과 졸업 △현재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희곡당선소감-이윤설▼

희곡을 쓸 동안 엄마가 떠주신 꽃 스팽클이 달린 파랑 손지갑이 책상에 있었다. 빈둥거리다가도 문득 그 촘촘한 질감을 뺨에 대어보고 지퍼를 열면, 맘 딱 먹고 쓰라는 말씀이 들리기도 하였다. 문 밖은 꽝꽝 얼어붙은 겨울이었고 전화벨이 잉잉잉 꿀벌처럼 울어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성탄 소포처럼 기쁘고 놀랍고 떨리는 소식을 받았다.

스무 살 무렵 혼자서 연극을 보러 다녔다.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버스를 갈아타고 소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서 기다리노라면 지루하거나 배고프거나 춥기도 하였지만, 무대 위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삶의 질료와 형상이 나타나 나를 꽉 끌어안고는 했다. 간혹 숨이 막히고 외면하고 싶었지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듣는 날이 더 많았다.

꼭 내가 쓴 희곡을 연극으로 올리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이젠 ‘이윤설적’이라는 내 이름에서 유래한 형용사를 갖겠다는 약속을 지킬 차례이다. 아주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 이 약속을 기다려 주세요, 윤호진 선생님.

자식이 밥 굶을까봐 쌀과 반찬보따리를 싣고 와 설거지 청소까지 하시고는 바삐 돌아가시던 부모님. 내 기쁨의 제일 으뜸은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흠모하고 존경하는 교수님들께, 내 반쪽 심장 20년 지기 친구 기연에게, 그리고 당선소식에 비명을 질러 이 행성을 조금 시끄럽게 했던 우리 포에티카사람들, 툭 하면 잠수함 타고 전화 안 받는데도 나를 믿고 기다려준 선후배님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다지도 귀애하는 꽃과 새와 별의 지옥인, 너에게.

▼심사평-일관된 아이디어…유연성 보완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주제의 가닥을 끝까지 가져가지 못하고 희곡이 갖는 구조적 특징을 저버린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비자금 문제, 철거민 사태, 낙태 및 노인문제 등 뉴스 헤드라인에 한 번쯤 거론되었던 사회적 문제점들이 모두 주제로 올라와 있다. 특히 사이버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인터넷과 채팅, 그리고 동영상의 재료를 도입한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띈다. 부패되어 있는 사회적 이면을 다루면서 원고지 100여장에 깊은 인상을 담아내려다보니 살인과 자살 및 엽기적 사건들이 만연하다. 그러면서도 사건을 통한 주제의 핵을 끌어올리는 데는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희곡을 쓰면서 무대에 형상화 했을 때의 감각을 끝까지 인지하고 마무리를 했어야 하나 지구력에서 그만 낙제를 한 것 같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처럼 내성이 강한 감미로운 언어의 향연을 풀어내는 깊이 있는 작품을 기대해보기도 했으나 그런 작품은 전멸이다.

이번에 선정된 작품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장의 변화와 기승전결을 염두에 두고 공을 들여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다. 쓰레기 종량제의 사회적 제도를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비인간적 세태와 엮어 풍자극처럼 꾸몄다.

아버지와 아들을 내다버리는 현실 속에서도 그것을 관조하며 바라보듯 가벼운 코미디로 채색한 것은 이 작품을 선택하게 한 큰 장점이다. 끝까지 일관성을 지닌 아이디어의 실현은 칭찬해줄 만 하고 좀 더 치밀하게 계산된 디테일과 유연성이 부족한 것은 초보 희곡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기에 충분함을 보여준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여 다양한 경험과 깊은 사고를 통해 내공이 쌓인 작품을 양산하는 고급인력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윤호진 연극연출가·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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