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씨 “울고있는 가족품에 돌아가게 해달라”

  • 입력 2003년 12월 1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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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송금과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12차례 법정에 서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1일 결심공판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박 전 장관은 이날 최후진술에서 “1991년 초 정계에 입문한 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당선과 성공을 위해 12∼13년간 단 하루도 휴가를 가지 못하고 일만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결혼한 지 36년이 됐고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이 있다. 막상 감옥에 와서 보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휴가 한 번 가지 못했던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매일 편지를 쓰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이날 A4용지 8장 분량의 자필 진술서를 30여분간 낭독하면서 자신의 정치역정을 얘기할 때는 수차례 목이 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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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서 논란이 된 김영완(金榮浣·해외체류)씨 자술서의 증거능력과 관련해 그는 “검찰이 주장하는 대로 내가 DJ정권의 최고 실세였다면 김씨에게 수첩을 꺼내 일정을 보여주며 구차하게 돈을 달라고 했겠느냐”며 “김씨 진술대로 내가 돈세탁을 맡겼다면 (김씨가) 자기 마음대로 주식투자 등을 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박 전 장관의 돈을 세탁 관리해 온 것으로 검찰이 지목한 인물.

또 그는 자신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 대해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돼 거짓진술을 하고 있다”며 “이 전 회장의 진술을 들으며 몇 번이나 울분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고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슬픔에 울고 있는 아내와 딸에게 돌아가게 해달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또 할일이 남아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한편 이날 박 전 장관의 변호인인 소동기(蘇東基)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박 전 장관과 김 전 대통령간의 일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박 전 장관이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으로 2001년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그의 부인은 “이제 해볼 만큼 해봤으니 미국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으나 김 전 대통령이 박 전 장관 내외를 청와대로 부른 뒤 박 전 장관에게 “당신은 더 할 일이 있다”며 다독였다는 것. 부인에게도 “내조를 더 잘해 달라”고 부탁해 박 전 장관이 차마 정계를 떠날 수 없었다고 소 변호사는 전했다.

소 변호사는 “박 전 장관이 남부럽지 않게 돈도 모았는데 치부를 위해 150억원이나 되는 돈을 받았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국민의 정부 실세로 통했던 박 전 장관의 위치와 그가 반성의 기미 없이 뇌물 수수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점을 고려할 때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며 유기징역의 상한선인 25년에 육박하는 중형을 구형했다.

박 전 장관이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검찰은 “150억원은 개인 뇌물로 역대 최고”라며 유죄 인정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어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는 ‘10년 이상 또는 무기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어 유죄가 인정될 경우 박 전 장관에 대한 실형 선고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지원 최후진술서 전문 보기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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