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최후진술서 전문

  • 입력 2003년 12월 1일 21시 34분


코멘트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지난 6월17일 특검에서 긴급체포로 구속수감되어 오늘로써 꼭 5개월반이 되었습니다.

7월4일 첫 재판을 시작하여 오늘 12번째 재판정에 섰습니다. 저로서는 평생 처음의 재판입니다. 저는 이 재판과정을 통하여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깨달았고 배웠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6개월여의 수감생활에서도 모든 구치소 법규를 준수하여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성찰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는 “국민의 정부”에서 주요직책을 맡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좌했습니다.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불철주야 국정을 위해 노력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역사를 체험했기에 저는 이러한 신념을 스스로 갖게 되었습니다

1991년 초 저는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당시 김대중 총재님의 집권이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수감되기 전까지 저는 김 전대통령님의 당선과 성공을 위해 12~13년을 단 하루의 휴가도 갖지 않고 일만 했습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요일도 휴일도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저는 결혼 36년여의 처와 대학생인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휴가 한번 가지 못했던 것도 구속수감 중에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속죄의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매일 제 처에게 옥중에서의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임기 후에도 김 전대통령님을 계속 보좌하려고 했습니다만 불가능한 현실입니다.

저는 국민의 정부 출범 때부터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을 재임하다가 2000년 9월 사임했습니다. 그 후 2001년 3월 김 전대통령께서 저를 정책기획수석으로 임명했고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 실세 왕수석의 재기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동년 11월말 김 전대통령께서는 당시 민주당 총재직을 사임하셨고 저도 보좌의 책임을 스스로 지고 물러났습니다.

2002년 1월 저는 정책특보, 동년 4월 비서실장으로 재기용 되었습니다. 이 때는 김 전대통령님의 건강문제가 야기되었고 집권말의 소위 레임덕의 어려운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대통령 비서실과 내각의 협조를 통해 대통령님의 업무를 성실히 보좌했고 다행스럽게 김 전대통령님께서는 경제회복등 많은 업적을 남기시며 무사히 임기를 끝내셨습니다.

제가 비서실장 재임기간 10개월 반 동안에 또 다시 일부언론에서 代(대신 대)통령, 부통령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저는 자중자애하면서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저는 전남 진도, 섬에서 태어났고 초.중.고.대학교를 소위 일류학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1972년도에 도미하여 20여년을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저의 본가나 처가는 국내외에서 법조인, 교수,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와야 할 친구도, 친인척도 없습니다.

오직 제 4촌 형이 1998년 제가 공보수석 재직시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했으며 당시 광주 모대학 사무총장으로 추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가지 않도록 제가 만류했습니다. 지금까지 4촌형은 퇴직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과거 “국민의 정부” 5년간 소위 무슨 무슨 게이트가 터지면 제가 언론에, 증권가 정보지에 거명되었습니다. 제가 구속수감된 중에도, 금년도에도 월드컵 휘장사업, 굿모닝 시티 비리에 관련이 있다고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저는 때로는 검찰조사도, 국회의 국정조사도 강도 높게 받았지만 모든게 무혐의로 판명되었습니다. 인사에도 게이트에도 오해는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였습니다.

저는 현재 대북송금관계, 현대로부터 150억원을 수수했다는 관계로 구속 재판을 진행중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물의에 대하여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검찰조사와 재판과정에서도 국익차원에서 일부 진술을 거부했거나, 깨끗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국민과 김 전대통령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사실도 있는 것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대북송금 관계에 대하여는 저도 많은 변명할 점도 있지만 역사 속에 묻고 제가 모든 책임을지고 어떠한 처벌도 민족과 국가 통일을 위해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책적 차원에서 현대의 지원을 협의했지만 그 후의 대출이나 송금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나 뇌물죄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너무나 어이없기에 저의 심정을 재판장님께 솔직히 말을 올리고자 합니다. 저는 특검에서 이익치로부터 150억원 CD를 받았다는 심문에 어안이 벙벙하여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다만 저는 그러한 사실이 없기에 계좌추적이나 관계인의 조사에 의해서 제가 무고함이 밝혀지리라 믿었습니다. 저는 검찰조사, 재판과정에서의 사실을 저의 변호인들이 밝혔으리라 믿지만 제 나름대로 꼭 재판장님께 말씀 올리고 싶었습니다.

첫째 정몽헌에 관해서입니다. 정몽헌과 저는 2000년초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관계로 처음으로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몽헌에게 어떤 금품도 요구하지도, 받지도 않았기에 감사의 표시도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정몽헌도 진술하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카지노 허가에 관련 문광부와 현대간의 접촉관계 문건에도 저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습니다. 문광부는 공문을 통해 카지노 허가는 불가하다고 밝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현행 법으로도 현대에 대한 카지도 영업허가는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지난 2000년 시월 총선전에 강원도 폐광촌 대표들이 당시 김택기 민주당지구당 위원장 안내로 문광부 장관실로 저를 방문했으며 저는 이 자리에서 어떠한 카지노허가도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 사실을 현 열린우리당 소속 김택기위원은 서면으로 작성,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상황에서 제가 현대로부터 150억원을 2000년 4월 중순에 받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2000년 4월 중순 후에도 제가 장관, 정책기획수석, 정책특보, 각부 업무을 조정할수 있는 비서실장으로 재임했지만 카지노에 대하여 단한번도 전화, ○○○ 회의를 한 사실이 없습니다. 현대에서도 그후 3년간 한번도 이를 저에게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정몽헌 김영완도 150억이라는 구체적 액수를 말하지 않았고 정상회담 준비에 필요하다,

박지원이 어려워 도와달라고 했다고 검찰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150억이라는 거금을 받았다면 감사표시를 할것입니다. 더욱 그 당시는 만약 제가 받았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제가 발설하지 않을 때입니다. 제가 아는 정몽헌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신사입니다. 이익치나 김영완은 제가 안 받았기에 감사표시를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먼저 정몽헌이 저에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둘째 김영완 관계입니다. 이용성 증인은 검사출신 변호사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법정에서 이용성 증인은 김영완이 이번 사건으로 언론에 매도되어 자술서를 보냈다고 진술했습니다. 저는 더 많은 매도와 구속마저 되어 6개월이 되어갑니다. 6하원칙에 의거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하더라도 재판장님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면서 재판을 하시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언론보도에는 김영완은 미국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남아, 동북아에서 자술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신빙성의 뒷받침을 위해서 보다 구체적 국가는 밝히지 않으면서도 호텔 이름을 밝혔습니다. 같은 이름의 호텔은 동남아, 동북아에 수십개가 있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외국에 체류하면서 변호인을 만나 자술서를 보내면 되는지 저는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제가 만약 돈을 김영완에게 맡겼다면 수첩을 꺼내 스케줄을 보시면서 구차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사정하겠습니까? 김영완은 저희 집에 온 사실이 없습니다. 6~7회 저희 집으로 돈 심부름을 했다는 사람은 하필이면 사망한 사람을 내세웠습니다. 100만원권 수표로 2~3억원을 저에게 주었다면 마땅히 계좌추적으로 밝혀져야 됩니다. 제가 150억을 맡겼다면 집권말이나 혹은 임기 후에라도 당연히 회수를 했어야 옳습니다. 김영완의 진술대로 그에게 돈세탁을 맡겼다면 김영완이 그 돈을 현금이나 수표등으로 보관하지 않고 자기 재산관리처럼 5~60억은 주식투자, 40억원은 국민채권 매입, 20억은 친구에게 빌려주기까지 했다는 것입니까? 검찰의 주장처럼 국민의 정부 가장 영향력있는 실세였던 제가 맡긴 돈을 김영완이 제멋대로 투자하고 사용할수 있겠습니까? 이용성증인은 김영완의 소재도 연락방법도 없다고 합니다. 단지 김영완으로부터 연락이 와야 받는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수사보고서에는 저에게 주었다는 100만원권 수표에 대한 검찰의 문의에 대한 전화에 답변했습니다.

어떻게 김영완에게 확인할 수 있었겠습니까?또한 이용성증인은 김영완은 본인의 건강과 가족의 안전관계로 거처도 귀국일정도 밝히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김영완은 50세 저는 61세입니다. 저도 고혈압, 대장염, 불면증으로 장기간 투약중이며 가슴에 심한 통증을 갖고 6개월여의 수감중 현저하게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제 처와 두딸도 매일 눈물속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김영완은 저의 선처를 바랄것이 아니라 당당히 귀국해서 검찰과 재판부에서 사실을 밝혀야 합니다.죄를 지은 사람이 세계각국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습니다.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김영완에 대해 취할 조치를 다했는지, 죄를 짓고 외국으로 나가서 변호인을 통해 자술서를 보내면 끝나는지 저는 이해가 안됩니다.

셋째 이익치 관계입니다. 저는 이익치를 국민의 정부 출현후에 몇번 만났지만 대화도 교류도 없었습니다. 이익치는 1989년부터 김영완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고 프라자 호텔도 자주 다녔습니다.

이런 사실이 없다고 이익치는 진술했지만 이익치의 운전기사는 이 법정에서 두사람은 계속 만났으며 프라자 호텔에서도 월 2-3회 점심시간에 만났다고 증언했습니다. 골프도 다녔습니다. 이익치는 요시다를 2000년 초에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이는 국정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익치는 요시다에게 전화를 했던바 그 당시 서울에 오지 않았다고 요시다가 말했다 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전화했는냐는 저의 변호인의 확인에 이익치는 검찰에서 검사님이 전화해주셨다고 두번이나 진술했습니다. 검사님 성함을 물으니 수사반이라고 바꿨습니다. 이익치는 남북정상회담예비회담에 역할이 없었고 김영완과 함께 여행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정몽헌도 법정에서 김영완을 본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이익치는 정주영 회장님에서 정몽헌에게 어이지는 모든 대북사업에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4번의 김영완과의 동행사실은 밝혀졌습니다. 김영완도 정몽헌의 요구로 동행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익치는 특검진술,김재수와의 대질신문, 자술서 등에서 150억CD관계를 부인하다가 정몽헌, 김재수의 진술로 인정했다고 했습니다. 정몽헌도 대북협상, 150억 부분에서는 이익치, 김영완을 제외시키려고 했으며 현대 강명구를 통해서는 이익치에게 박지원이 150억의 요구가 직접 있었다고 진술하라고 조작까지 했습니다. 정몽헌, 김영완, 이익치의 관계나 진술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무슨 관계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익치는 저에게 자기소유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박지원이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고 했습니다. 핸드폰 번호를 물으니 당시 이익치는 2-3개의 핸드폰을 사용했고 1개월정도 사용하고 버렸다고 했습니다. 통화기록을 감추려고 하는 말이지만 마땅히 검찰에서는 통화기록을 밝혔어야 합니다. 토파즈에서의 저의 언행은 구체적으로 진술하면서도 날짜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막연히 시월중순이라면 제가 어떻게 알리바이를 제출할 수 있겠습니까? 약속시간도 밤 10시 30분에서 4일 후에는 9시 30분으로 바꿉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김재수를 밤 8시에 만났기에 역산하니 밤9시30분이 된다는 겁니다.

거듭 말씀올리지만 이익치는 10월 17일 이 법정에서 시간과 장소는 박지원이 정했다고 재판장님 앞에서 진술했습니다. 회사 회장이면 부사장으로부터 두 사람 사이에 비밀도 아니고 공이 아는 150억CD를 받으면서 제가 밤 9시반에 프라자호텔에서 만나자고 했으면 회사에서 받을 수도 있고, 프라자호텔이나 근처 혹은 김재수가 식사하는 인사동에서도 가능할텐데 하필이면 밤8시에 계동 현대사옥에서 먼 거리인 워커일 근방 산책로에서 받은 사실은 납득이 안됩니다. 이익치는 에쿠스 리무진을 손수 운전하고 프라자 호텔에 도착하니 시간이 남아서 주차장 차안에서 10분간 앉아있다가 5분전에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증언했습니다. 주차기록이 남아있을 것을 염려해서인지 10월 17일 재판에서는 프라자 호텔 뒷길에 주차했다고 주차장소를 바꿨습니다. 재판장님께서도 두번이나 발렛파킹을 하지 않는 사실을 물으셨습니다. 이번에는 뒷길이라고 또 뒷길 공사장이라고 계속 바꿨습니다.

고급승용차를 길거리에 주차한것도, 현대회장이 3천원이면 되는 발렛파킹을 하지 않은것도 이해가 안됩니다. 주차장과 길거리 주차를 구분못할 수준의 이익치도 아닙니다. 더욱 11월 17일 재판때는 호텔 뒷길 즉 소공동에서 들어오면서도, 호텔후문에서 나가면서도 공히 왼쪽에 주차했다고 했습니다.

저의 변호인은 그 건물은 1998년도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또 이제는 오른쪽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묻자 또 남강식당으로 가는 골목으로 15m ~20m정도에 주차했다 했습니다.

재판장님께서는 이익치를 불르셔서 무엇인가를 그리시면서 물으셨습니다만 저는 그 내용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익치는 모든 진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허위와 바꾸기를 계속하겠습니까?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정몽헌으로부터 이익치를 보낸다는 통보도 없었고 정몽헌이 4월 17일에 외국에서 귀국하는데 4월중순 부피도 크지 않은 봉투를 무엇이 급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이익치에서 제가 받겠습니까? 만약 급했다면 3년간이나 김영완에게 맡겼겠습니까? 모든게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이사건으로 특검에서 이익치와 대질할 때 이익치가 손을 떨고 안색이 창백해지며 말을 더듬거려 이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알았습니다. 이익치는 어떤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조정되어 저에대해 거짓진술을 하고 있다고 짐작했습니다. 재판중에서도 이익치의 증언을 들으면서 감정이 극도로 흥분되었으며 욕설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신성한 재판정이어서 울분을 참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익치가 저를 만나러 온것이나 저를 만나는 사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차량을 직접 운전했다고 주장하며 프라자호텔 에 들어가는것도 본사람 없습니다. 만난시간과 주차장소는 계속 바꾸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에 어떠한 금품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익치에게 150억CD를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김영완에게도 어떤 자금관리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저의 변호인과 상담한 바에 의하면 제가 뇌물죄로 유죄를 받게되면 150억원을 추징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돈은 김영완의 수중에 있는데 추징은 제가 받아야 합니까?

더욱이 김영완은 40억원의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후 자기가 믿는 사람에게 맡겨두었다가 지난 9월경 자기의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검찰에서는 김영완이 40억원을 보관시킨 사람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국민의 정부의 국정홍보를 위해 김영완의 도움으로 일부관계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화근이었기에 깊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북송금관계에 대해서는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재판장님!

150억원에 대해서는 저는 결백합니다. 현명하신 재판을 주셔서 매일 슬픔에 울고 있는 제처와 어린 두딸에게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대한민국의 앞길을 위해서 또하나의 제가 할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후진술을 허락해주신 재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제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끝

2003. 12. 1

박지원 올림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 22부 재판장님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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