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선우석호/‘民生’ 없으면 정치도 없다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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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대통령 측근비리 특별검사제를 둘러싸고 서로 치고받는 사이에 민생 경제는 실종되고 있다. 117조5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은 계수조정도 시작하지 못했다. 수년을 끌어온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법안, 국민연금법 개정안 등 국가경제체제를 개선할 주요 법안들이 폐기될 위기에 놓여 있다.

▼ 세계경제 호전…도약 절호의 기회 ▼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방대한 국가 공조직이 손을 놓게 될 상황이고, 수많은 법안의 폐기로 국가신인도는 추락하고 각종 경제 사안이 미궁에 빠지면서 민생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경제가 새로운 활황을 위해 꿈틀거리고 있는 지금, 이 절체절명의 호기를 살려야 할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고, 대통령과 여야는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기 위한 더러운 싸움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봉인가. 국가 무용론이 대두될 지경이다.

재적 3분의 2 이상의 국회의원이 통과시킨 특검법안을 거부한 대통령이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이라도 할 것처럼 초강경 대응하는 야당이나 모두 국민이 보기에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석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일자리를 못 찾아 전전긍긍하는 젊은이들의 절규나 해고 위기에 허덕이는 수많은 장년층의 고통, 중국에 몽땅 빼앗기고 있는 제조업 경쟁력에 대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경제가 없으면 정치도 없는 시대가 오고 있는데 경제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으니 국민은 참담할 뿐이다.

올해 초만 해도 전 세계가 디플레이션 공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국은 4월 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2% 하락했고 실업률은 6.0%로 2000년대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불황심리가 확산돼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부도율이 높아지는 등 1993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계경제는 기적적으로 반전하고 있다. 미국은 3·4분기에 전 분기 대비 8.2%의 고속성장을 했다.

이제 정신 좀 차리자. 지금은 도약할 절호의 찬스다. 이 호기를 놓치지 말자. 새로운 도약은 창의와 혁신으로 가능하다. 혁신은 왕성한 투자 분위기 속에서 창출된다. 투자는 위험에 대비해 높은 수익이 예상될 때 이뤄진다. 디플레이션 기조에서 성장기조로 바뀌는 지금 미래 수익이 과거보다는 높게 예상되므로 투자에 따르는 위험만 낮아진다면 투자의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강성 노조의 투쟁, 투자를 위축시키는 출자총액제도 같은 규제 등을 줄일 수 있다면 투자는 활성화된다. 도약의 경제정책은 경영진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창의와 혁신은 주주와 임직원들에게 성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때 일어난다. 적절한 보상의 전제는 투명한 경영에서 비롯된다. 투명한 경영을 지향하는 지배구조 개선 정책들은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 불법정치자금 공여와 관련해서 논란이 되는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이에 철퇴를 가할 수 있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는 입법화되어야 한다. 이 제도의 입법이 폐기되기 일보 직전인데도 특검 관련 정치 공방이 지속되는 현상을 국민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대중영합주의에서 벗어나야 ▼

시장에는 경쟁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부실한 기업은 시장에서 하루빨리 퇴출시켜 인수합병(M&A)시장을 통해 유능한 경영진이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제효율을 증대시키는 자유무역협정, 공기업 민영화 등도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 성장 잠재력의 악화를 막는 길은 시장진입 및 퇴출을 자유롭게 해 기업가정신을 고취시키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법을 올바로 집행해 스스로의 권위를 회복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으면 한다. 이제 대중영합주의에서 벗어나자. 이 정부가 표방하는 ‘참여정부’의 진정한 뜻은 여론에 끌려 다니는 정부가 아니라, 올바른 소리를 다양하게 듣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의 관점에서 결정을 내리는 민주적 리더십에서 찾아야 한다. 실종된 민생을 되찾지 않고는 정치도 없다는 말을 되새길 때다.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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