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광형/부안에 '사랑과 감사' 를

  • 입력 2003년 7월 27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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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표류하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문제가 부지 선정 이후에도 주민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처리장 부지로 선정된 전북 부안지역에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인구 7만의 지역에서 시위 군중이 1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13년 전 충남 안면도 사태가 재현될까 우려된다.

▼오죽했으면 기피시설 유치했을까 ▼

사건의 발단은 김종규 부안군수가 민감한 사안임에도 주민들의 동의 없이 유치신청을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 군수는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신청서를 접수시켰다고 한다. 오죽하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우선, 많은 부안군민들이 위험시설 유치에 반대하고 있다. ‘절차상 문제가 있다’, ‘보상이 적다’, ‘보상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등의 소리도 들린다. 정부나 담당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그 정도면 적절한 보상이다, 한번 신청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국가적인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주장들이 각각 일리가 있어 섣불리 훈수를 두기 어려운 입장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은 알려진 것처럼 위험한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지형 위에 완벽하게 시공하면 안전하다. 이 세상에 100%는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천재지변 확률만큼이나 위험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위험시설’이라기보다는 ‘혐오시설’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화장장이나 납골당처럼 기분이 나쁜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 군수의 판단에 동의한다. 하지만 유치신청 절차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이를 풀기 위해서는 김 군수가 지역주민들에게 사과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겸허한 자세로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정부는 부안군에 한수원 본사를 이전하고 양자가속기를 설치키로 했다고 한다. 또 지역발전 자금으로 약속된 3000억원은 사회간접자본과 장학금 등으로 투자될 모양이다. 하지만 김 군수는 6000억원을 요구하고, 실제 설치장소인 위도 주민들은 현금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김 군수와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할 것으로 본다. 전례나 외국사례만 생각하면 풀리지 않는다. 국가적 난제를 원점으로 돌리느냐, 아니냐 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군수가 주민들 앞에 떳떳이 나서 설득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합의 본 보상 약속이 확실히 지켜지도록 법제화해 주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정부의 약속이니 지켜지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를 믿지 못하게 만든 사례는 많았다. 충청은행을 하나은행과 통합시킬 때 했던 본사의 대전 이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또 새만금 사업과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후보지 약속도 여러 가지 이유로 안개 속에 있다.

지역주민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이해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혐오시설이 온다고 해도, 더 좋은 시설이 들어와 잘 살게 해 주면 결국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오지 않고 농수산물이 배척당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것은 정말 불필요한 걱정이다.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도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

▼ 밀어붙이기 더 큰 문제… 신뢰 중요 ▼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당국자들이 주민동의 없이는 이 사업을 절대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다. 혹시라도 밀어붙여 보겠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큰일이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공사요원이나 운영요원들은 항상 경찰호위를 받고 일해야 하는 ‘한국판 팔레스타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모두가 기피하는 시설을 유치하겠다고 했을까. 이번에도 신청 지역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부안군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자.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답이 보일 것이다.

이광형 KAIST '미래산업' 석좌교수·바이오시스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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