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영/'배설의 정치' 이제 그만

  • 입력 2003년 7월 3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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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가 아니라 ‘그들이 알고 싶다’가 논란이 되고 있다. 검증대상은 금배지들이고, 주체는 ‘국민의 힘’이다. 이 단체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전(前) 진행자가 주도멤버의 한 명으로 참여하고 있다. 바야흐로 TV프로가 브라운관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 ‘국민의 힘’ 議員검증 편파시비 ▼

한국도 민주화된 지 벌써 15년을 넘기고 있다. 그 사이 우리는 두 번의 의미 있는 정권교체를 경험했다. 1998년에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당 간에 정권이 바뀌는 일이 벌어졌고, 2003년에는 집권층의 구성이 세대와 경력 면에서 혁명적으로 바뀌는 파워 시프트(power shift)가 발생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한국 민주주의가 이미 이행기를 넘어 공고화 단계에 들어갔다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행태는 여전히 이행기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배설(排泄)의 정치’다.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 하에서 수없이 억압됐고, 불쾌한 경험들도 갖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뤄지자 이에 대한 반작용이 엄청난 힘으로 튀어나왔다. 그 와중에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내란과 부패혐의로 법정에서 처벌되었고, 그것은 많은 국민들에게 배설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공고화 단계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이런 배설의 감정이 정치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배설의 정치가 지속될 경우 배제, 분열, 소모, 그리고 불임(不姙)의 정치를 낳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섭과 통합을 낳는 미래지향적 생산의 정치다.

‘국민의 힘’은 의원정보 공개를 통한 ‘좋은 정치인’ 밀어주기라는 취지를 표방하면서 ‘그들이 알고 싶다’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1차 검증대상자 선정방식이나 질문서의 내용을 보면 이 운동이 생산의 정치를 지향하기보다는 배설의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1차 검증대상자는 대부분 반(反)노무현 성향과 보수적 이념을 지닌 의원들이다. 그러다 보니 이 운동이 노 대통령에게 비우호적인 정치인을 제거하고 현재 논의 중인 신당의 정지작업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모든 의원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했으니 두고 볼 일이지만, 기왕에 ‘좋은 정치인’ 밀어주기 운동이라면 ‘국민의 힘’이 칭찬하고 싶은 의원부터 선정해 검증에 들어간다면 편파시비도 일지 않고 보다 생산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편 ‘국민의 힘’은 자신들이 보낸 질문의 내용에 대해 객관성과 균형성 면에서 시비가 일자 “유권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유권자가 궁금해 하는 내용이 어찌 그것뿐이랴. 현재 한반도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 핵문제라든지 김정일에게 볼모로 잡혀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기업지배구조 개선문제 등 국민이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는 문제는 많다. 어쩌면 대다수 국민들은 ‘국민의 힘’이 제기한 과거 지향적 문제보다도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과 직결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의원들이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가 더 궁금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힘’은 질문의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은 특정 의원 ‘창피주기’ 운동으로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좋은 정치인 ‘밀어주기’ 운동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포용-통합 ‘미래형 정치’ 필요 ▼

정치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가 느는 것도 권장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시민단체를 포함한 원외세력의 개혁과 참여 노력은 원내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제도개혁이 일어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원외세력이 나서서 원내세력의 인적 청산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평소 자발적 개혁을 게을리 한 정치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을 청산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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