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해 영웅들' 제대로 기리려면

  • 입력 2003년 6월 27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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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해교전 1주년을 맞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 해군 장병들의 영령 앞에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울 뿐이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우리는 월드컵에 정신이 팔려 초라한 영결식으로 영웅들을 보냈고 사회는 그들을 잊고 지냈다. 지난주 천도집회에서 유족들이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을 지적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이 나라가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1주년을 앞두고 해군 2함대사령부에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전적비가 세워졌고 어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전적비를 찾아 고인들을 애도했다. 1년 전 영결식 때 대통령과 총리는 물론 국방장관 조차도 참석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런 행사만으로 정부와 대다수 국민이 보여준 무성의와 무관심을 얼마나 씻을 수 있고, 유족들의 서운함을 달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 국민은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들을 1년 이상 애도할 만큼 정이 깊은 민족이다. 그런 국민이 왜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영웅들을 외면했단 말인가. 왜 부상자와 전투에 참가한 해군 장병들에게 무관심했단 말인가.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을 오도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일이다.

서해교전은 호전적인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유감 표명을 서둘러 수용하고 북한의 도발을 덮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는 더 악화됐다. 잘못된 출발의 후유증을 두고두고 겪고 있는 것이다.

뒤늦은 추모행사보다는 남북관계를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 그것이 해군 용사들에게 진 빚을 갚고 그들을 제대로 기리는 길이다. 수많은 추모 인파가 거리에 나오는 것도 좋지만 서해 영웅들은 북한의 도발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굳은 결심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변해야 유족들의 눈물이 마를 것이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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