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해리포터의 마법

  • 입력 2003년 6월 23일 18시 27분


코멘트
20일 밤부터 21일 새벽 사이 미국 영국 호주에선 ‘꼬마 마법사’들이 책방 앞에서 밤샘 파티를 벌였다. 21일 0시 첫선을 보인 해리포터 시리즈 5탄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사기 위해서다. 첫날 미국서 500만권이 팔려나간 이 책의 열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보문고는 예약주문 고객들이 21일 택배로 받을 수 있게끔 세심하게 사전 발송 작업을 펼쳤고 현장판매분 500권은 이틀 사이에 동났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5탄은 살인면허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007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시작한다.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머글’ 이모네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던 해리가 참다못해 마법을 휘두른 벌로 재판을 받게 되는 거다. 열다섯 살이 된 해리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선과 악은 동화에서처럼 똑 부러지게 보이지도 않는다. 청소년들이 으레 겪는 호르몬의 불균형 속에서 해리는 첫 키스를 하고,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평범한 청소년다운 좌절 속에 방황하기도 한다. 가족사의 비밀과 대를 이은 복수, 배신, 가까운 이의 죽음과 희생에 분노하고 교훈을 얻으면서 해리는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해리포터가 200개 국가에서 55개 언어로 번역될 만큼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리는 마법사의 피를 타고났지만 슈퍼맨은 아니다. 마법도 단숨에 익힐 수 없다. 자존심 상하고 질투심에 불탈 때도 있지만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다. 즉 해리 역시 결점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든 독자들이 ‘해리포터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여기는 것이다. 해리가 고아로 구박받으며 외롭게 자랐으나 운명에 맞서면서 자신의 힘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신화 속의 영웅과도 흡사하다. 아동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이 같은 특징이 어린이를 성장시키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마술적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K 롤링의 신데렐라 같은 성공 스토리도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1탄을 쓰던 9년 전만 해도 아기 분유 값이 없어 고민했지만 지금은 4억5000만달러를 벌어들여 영국 여왕보다 더 부자가 됐다. 그러면서도 불치병으로 투병하는 어린이에게 전화로 책 내용을 알려줘 조금이라도 생명줄을 연장시킬 만큼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우리시대 독자에게 건 최고의 마법은 글을 읽는 기쁨을 안겨 줬다는 점이다. 영상세대 아이들이 밤새워 책을 기다리게 만들 정도면 역사에 기록될 작가로 꼽힐 만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