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특검을 흔들지 말라

  • 입력 2003년 6월 15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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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송금 사건을 수사 중인 송두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제1차 시한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온 특검팀으로서는 갈 길이 바빠 보인다. 그 사이 현대의 대북 송금액 5억달러, 청와대와 국정원 및 산업은행과 외환은행 인사들이 북송 자금조성과 송금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져 이미 이근영 당시 산은 총재를 비롯한 몇몇 인사들은 기소되었고, 이기호 전 대통령경제수석도 기소에 직면해 있다.

▼특검법 발표 당시 상황 잊었나 ▼

지금까지의 특검 수사로 새로운 각본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이미 올 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국민 해명과 현대측 소명이 사건의 윤곽을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그 범위 안에서 ‘남북 교류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과 외환관리법 위반에 관한 사항을 기소 대상으로 삼았다. 이 정도의 사건을 놓고 특검까지 끌어들였어야 했는지 일말의 회의감마저 든다. 오늘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소환해 조사한다니 이제 특검 수사도 결정적인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현대의 대북송금에는 남북경협 차원뿐만 아니라 정상회담에 대한 대가 성격도 포함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이미 밝힌 5억달러 외에 추가로 대북 비밀송금은 없었는지, 현대에 대한 다른 특혜는 없었는지, 대출 자금이 대북송금 이외의 용도로 전용된 점은 없는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북 비밀송금의 주역이 누구인지, 조역들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짜여졌는지를 밝혀내는 일이 법리적으로 중요해 보인다. 실제 대북송금을 시행한 주체는 현대로 보이지만, 그 배후에 다른 연출자가 있었다면 현대는 운반책이라는 조역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에 말이다.

문제는 특검팀 수사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거세지는 정치권의 조직적 반발이다. 특검팀이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는 김 전 대통령을 조사하는 문제와 그러기 위해 특검 수사기간을 연장하는 문제다. 민주당은 특검 수사기간 연장에 반대한다는 당론을 정하고, 그 건의문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도 “민족 화해와 상생의 길을 개척한 주역들을 단죄할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희상 비서실장도 “노 대통령이 특검법 수용을 공포할 당시의 여야 공감대를 감안할 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전 대통령도 어제 저녁 방영된 6·15남북정상회담 3주년 특별회견에서 “국가와 경제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부정과 비리가 없는데도 사법처리 대상이 되고 있어 당시 책임자로서 참으로 가슴 아픈 심정을 금치 못하고 있다”면서 “대북송금 문제가 사법심사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정치권의 이 같은 흐름이 힘을 얻는다면 특검 수사기간 연장은 물 건너 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시간에 쫓긴 특검팀은 양파 껍질을 다 벗기지도 못한 채 어설픈 요리를 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곤경에 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국론은 다시 갈라져 진상규명과 안정을 기대했던 당초의 목표는 실종되고, 급기야는 엉뚱하게도 특검 무용론이 득세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법적 판단은 차후의 문제 ▼

이 상황에서 대북송금 의혹이 특검의 손으로 넘겨지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를 회고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당사자들의 해명은 국민을 납득시키기에 부족했었다. 결국 정치권의 결단으로 특검법이 발효되고 수사가 진행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수사 중인 특검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될 수 있는 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그 활동을 도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검팀의 의지다. 사법적인 판단은 차후의 문제인 만큼 지금은 수사와 진상규명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매진해야 할 것이다.

김일수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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