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집행권 틀어쥔 기재부 ‘수시배정’ 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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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예산 400조 ‘깜깜이 편성’]자체 판단으로 사업진행 막기도

농림축산식품부의 가뭄 대비 용수개발 예산(425억 원)은 올 8월까지 1원도 쓰이지 않았다. 이달 1일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고서야 300억 원이 지출됐지만, 나머지 125억 원은 여전히 언제 쓰일지 기약이 없다.

국회에서 확정된 예산이 이처럼 발이 묶인 것은 ‘수시배정’이란 제도 때문이다. 기재부는 국회에서 통과된 예산 사업이더라도 집행이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할 경우 ‘수시배정 대상사업’으로 지정한다. 수시배정으로 지정된 사업은 기재부 예산실이 허락할 때까지 예산이 집행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국회와 관가에서는 기재부가 예산 편성뿐 아니라 집행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기재부는 2014년까지 수시배정 기준을 명시하지 않다가 지난해에야 ‘예산 집행지침’에 △구체적 사업계획이 없는 경우 △총사업비가 확정되지 않은 경우 등 11가지 지정 기준을 신설했다. 하지만 예산을 해당 사업에 어떤 기준으로 배정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선 국회에서 확정한 예산의 집행을 기재부가 임의로 조정하는 것이 ‘3권 분립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정부가 탐탁지 않아 하는 사업을 수시배정으로 지정해 연말까지 예산 집행을 미루다가 불용 처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수시배정은 국회가 의결한 사업의 집행을 정부(기재부)가 좌우하는 제도로 불합리하게 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예산 문제에 대해서는 재정건전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기재부는 예산 편성을 할 때마다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현재 나랏빚은 예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2012년 말 국가채무 규모는 445조2000억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4.0%였다. 하지만 최근 국회가 처리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682조7000억 원,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4%로 나타났다. 5년 새 국가채무가 237조5000억 원 늘어나고, 국가채무 비율도 6.4%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재부가 만든 국가채무관리계획이 부실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계속 나온다. 5년 전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2∼2016년 국가채무관리계획’에선 국가채무 비율이 2012년 말 고점을 찍은 뒤 2013년 33.2%, 2014년 31.4%로 낮아지고 2015년에 29.9%로 떨어져 20%대 후반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국가채무 비율은 2015년 37.5%로 치솟았고, 내년에는 40%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박민우 기자
#예산집행권#기재부#수시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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