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中企기술 뺏는 대기업 갑질 뿌리 뽑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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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
“대기업에 납품할 수 있다는 기대로 자체 기술 적용 제품을 개발해 작동 방법을 직접 시연하고 동영상도 촬영해 제공했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납품계약은 되지 않았죠. 나중에 알고 보니 저희 핵심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대기업의 다른 협력사를 통해 납품되고 있었습니다.”

“제품 품질관리 때문에 생산 공정을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생산라인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생산라인을 몰래 동영상으로 촬영해 이걸 중국 업체에 넘겼더군요. 정말 억울합니다.”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의 사례들이다. 갑의 횡포는 생각보다 훨씬 교묘하고 집요하다. 이들이 빼앗은 기술은 중소기업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평생을 걸쳐 개발한 핵심 기술이자 노하우다. 중소기업은 왜 대기업에 자사의 기술을 보여주거나 제공하는 걸까.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갑을 관계에서 비롯된다. 대기업은 물량 확보, 거래 유지 등 소위 말해 ‘중소기업의 목줄’을 손에 쥐고 기술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사실상 협박에 가깝다. 당장 눈앞의 거래를 확보, 유지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요구가 무리하고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다.

앞선 사례처럼 어렵게 자신의 피해를 밝힌 중소기업은 이미 대기업과 거래가 끊긴 경우다. 아직 거래가 진행 중이거나 거래를 앞둔 중소기업은 기술유용 피해에 대한 하소연조차 하지 못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이 피해자로 추정되는 중소기업에 찾아가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도움을 주고자 해도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다. 조사에 협조했다는 소문이 나면 거래 단절 등의 보복이 있을까 봐 두려워서다.

얼마 전 공정위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을 위한 기술유용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는 대기업의 부당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고, 피해를 입어도 침묵해야 하는 열악한 지위에 있는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담았다.

특히 기술유용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매년 집중 감시 업종을 선정해 선제적으로 직권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기술유용 피해를 공정위가 직접 찾아 구제하기 위해서다. 적발된 대기업은 엄정하게 조치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배상액도 ‘3배 이내’에서 ‘3배’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중소기업이 피해를 참기보다 신고하고 보상받는 것이 더 유리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려는 조치다. 규율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기술 유출’ ‘경영정보 요구’ 등 편법적이고 우회적인 불공정행위를 금지하고 ‘조사 시효 연장’ ‘기술자료 범위 확대’ 등 중소기업 기술을 폭넓게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또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 특허청 등과 협업 체계를 지속적으로 유지, 강화해 범부처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고자 한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소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그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대기업은 인식 변화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대기업이 모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개발한 크고 작은 수만 개의 기술이 융합돼야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대기업 스스로가 중소기업과의 상생만이 기술 무한경쟁 시대의 생존 전략임을 인식하고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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