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아쉬운 ‘코로나 공감’ 능력[현장에서/신규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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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강원 강릉시 국군강릉병원 위병소에서 한 병사가 마스크를 쓴 채 근무를 서고 있다. 강릉=뉴시스
22일 강원 강릉시 국군강릉병원 위병소에서 한 병사가 마스크를 쓴 채 근무를 서고 있다. 강릉=뉴시스
신규진 정치부 기자
신규진 정치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도로 확산되던 24일,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내 매점(PX) 앞은 마스크를 사기 위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길게 늘어선 줄 어디에서도 병사들의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이날부터 이틀 동안 계룡대 PX는 병사를 제외한 장교, 부사관 등 간부에게만 선착순으로 마스크를 판매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마스크 구매에도 계급이 있는 것일까. 일단 군의 설명은 이렇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수요가 급증하면서 계룡대에서 보유하고 있던 마스크 재고가 급감했다. 한 달에 10개씩 마스크를 보급받는 사병들과 달리 부사관 이상 간부들은 시중에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많았다고 한다. 간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계룡대 특수성도 고려됐다.

당연히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병사들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군이 간부를 먼저 배려한 모양새가 돼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군은 마스크를 확보해 3월부터 모든 병사에게 하루에 한 개씩 마스크를 지급하겠다고 대책을 내놨다.

군 지휘부는 이를 일회성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소동을 보며 정부와 군의 조치에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군 특성상 일정 지역을 벗어나기 어려워 어느 직군보다 집단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고려가 있었느냐는 지적이 많다. 군 관계자는 “마스크는 이제 그냥 보급품이 아니라 핵심 전투 장비 중 하나로 인식하고 미리 확보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민간 회사 같으면 감염 시 자가 격리하고 쉴 수 있지만 군인은 자기 자리를 비우면 그만큼 대비태세 상황에서 전력 공백으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마스크 수급 계획 과정에서 별도의 고려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군 간부들은 근무시간 전후에 마스크를 직접 살 수 있고 가족들이 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병사들이 살 수 있는 곳은 PX뿐”이라고 말했다. 한 병사는 “병사에게만 판매 제한을 두는 것에 서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마스크 1개를 며칠씩 쓰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고도 했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당분간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특히 외부와 격리되어 있는 군인들이 코로나 사태에서 상대적으로 ‘방역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군의 전력 유지 차원에서도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마스크 보급을 늘린다는 3월부터는 적어도 ‘사병이라 마스크를 사지 못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도록 국방부 차원에서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규진 정치부 기자 newjin@donga.com
#코로나19#마스크 보급#방역 박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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