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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은 하지 맙시다[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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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은 하지 맙시다[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주성하 기자 입력 2019-10-31 03:00수정 2019-10-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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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0일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성공적인 연애를 하려면 크게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들었다.

우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상대에게 줘 호감을 사야 한다. 교제에 성공하면 그 다음은 신뢰를 쌓아야 한다.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상대에게 줘야 한다는 뜻이다.

호감을 얻는 데 성공하고도 신뢰를 쌓지 못해 깨진 커플들을 자주 본다. 대개는 이 단계에서 다른 인연을 찾는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집착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 경우 상대방을 쫓아다니는 스토킹 단계에 이르고, 이는 대개 결말이 좋지 않다.



최근의 남북관계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 아쉽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판문점 회담과 평양 방문을 통해 김정은의 호감을 얻는 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백두산에서 두 사람이 함께 손을 번쩍 쳐들며 지은 표정들에선 진심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후 단계에서 양쪽은 크게 틀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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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많은 약속들이 오갔을 것으로 확신한다.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그리고 평양에서 두 사람이 비공개로 보낸 많은 시간과 당시 김정은의 얼굴에 드러났던 밝은 표정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들을 보면 그 약속이 실행으로 이어지고, 신뢰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한 것 같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 역시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제안에 크게 환영하며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위해 북한과의 사이에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들만 오갔을 뿐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동의가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입장만 거듭했다.

김정은이 지난주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하자 화들짝 놀란 우리 정부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북한에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며 “북한의 관광산업 육성 정책 등도 충분히 고려하면서 금강산 관광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이마저 거절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올해 초 김정은이 제안했을 때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움직였더라면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신년사를 통해 북한 주민과 전 세계에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지만 상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자 김정은은 지금 무안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눈에 1년 넘게 미국만 쳐다보며 남북관계 진전에 손을 놓고 있는 남쪽은 ‘미국의 마마보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올봄부터 문 대통령과 더는 교제하려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있다.

연애를 잘하려면 눈치도 있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이 떠날 조짐이 보이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이 떠나려 하자 ‘남북 평화경제’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 ‘올림픽 공동 개최’ 같은 뜬금없는 메시지만 남발했다.

상대가 나를 마마보이로 생각하고 멀리하려 할 때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제일 시급하다. 그렇게 신뢰를 회복해야만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외면한 채 “결혼해주면 신혼집은 어디에 잡고, 애는 몇 명을 낳고, 결혼 10주년엔 하와이로 가족 여행 가자”는 식으로 희망사항만 쏟아낸다면 상대의 상처는 깊어질 뿐이다. 현실에선 이쯤 되면 스토커로 간주돼 상대의 마음이 완전히 닫힐 수도 있다. 이런 스토킹은 당장 멈춰야 한다. 희망사항만 남발하며 북한에 매달릴 시간에 미국을 찾아가 설득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

대통령이 이제라도 북한의 심중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내고, 조언을 받는 일도 시급해 보인다. 문 대통령에게 누가 대북정책을 조언하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작년 청와대가 대통령이 여름휴가 동안 평양 번화가를 찍은 사진집을 읽었다고 홍보할 때 크게 실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읽은 사람이나, 추천한 사람이나 대북 인식이 사진집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큰일이다. 아직 임기가 반이나 남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도전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남북관계#판문점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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