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 구입 사실 숨겨 탈세 ‘꼼수’ 고액 자산가 146명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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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8월 21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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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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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재활전문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 A씨는 최근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지역에 5층짜리 상가 2채와 아파트 1채를 구입했다. A씨는 해외 부동산을 사들인 사실이 세무당국에 알려지면 소득과 자산규모가 드러나 세무조사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꼼수’를 쓰기로 했다. 해외 부동산 대금을 송금하면서 은행에 신고하는 절차를 고의로 생략한 것이다. A씨는 말레이시아 부동산 알선업자가 차명으로 한국에 만든 환치기 계좌로 계약금과 중도금 3억7000만 원을 빼돌렸다가 당국에 적발됐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A씨처럼 말레이시아 경제특구인 조호바루 지역의 상가와 전원주택 등을 구입하며 외국부동산 취득신고를 하지 않은 고액자산가 146명을 적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조호바루는 싱가포르와 국경이 맞닿아 있으면서 부동산 가격이 싱가포르의 약 20% 수준으로 낮다는 점 때문에 한국인 구매 수요가 비교적 많다.

당국은 최근 말레이시아 주택가격이 오르며 한국 부유충의 부동산 쇼핑이 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을 통해 이들을 적발했다. 이번에 적발된 146명이 취득한 해외부동산 가격은 약 1000억 원 규모다. 계약금과 중도금 명목으로 불법 송금한 금액만 135억 원에 이른다. 의사 회계사 세무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와 중견기업 대표, 대기업 임직원 등 자산가들이 주로 탈세 혐의를 받고 있다고 관세청은 밝혔다.

이들이 세무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불법송금한 금액 중 절반 이상인 70억 원을 환치기 계좌를 통해 거래했다. 말레이시아 부동산 알선업자가 친인척 명의로 6, 7개의 계좌를 만들면 한국 투자자들이 이 계좌로 1000만~2000만 원씩 나눠 돈을 보내는 식이다.

직접 현금다발을 들고 말레이사아로 출국해 현지에서 돈을 전달한 사례도 있었다. 50대 주부 B씨는 21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구입한 뒤 가족, 친구와 말레이시아에 여행가는 것처럼 꾸며 2억8000만 원의 현금을 밀반출했다.

관세청은 부유층이 탈세를 위해 해외 부동산 구입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본다. 해외 부동산을 몰래 구입하면 국내 소득을 해외로 분산해 소득 규모를 줄일 수 있어 세금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상가를 매입한 뒤 상가 임대로 수입을 올려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국내에서 빼돌린 돈으로 구입한 해외 부동산을 그대로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상속·증여세도 피할 수 있다.

관세청은 10억 원 초과 고액 투자자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소액투자자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려면 은행에 반드시 신고해야 하며 적발되면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처벌을 받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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