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훈상]호남서 도로 사라진 보수 후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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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상 정치부 기자
박훈상 정치부 기자
이정재 전 광주교대 총장(72)은 4년 전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광주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게 도와달라”고 여러 번 읍소했지만 최종 득표율은 3.4%로 저조했다. 이 전 총장은 최근 전화 통화에서 그 선거를 되돌아보면서 “후보 명함을 받자마자 땅에 던지고, 침 뱉는 시늉을 하는 유권자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요즘 호남에서 한국당의 사정은 어떨까. 이달 1일부터 13일까지 부산을 출발해 제주 강원 충청 서울 등 전국을 돌며 6·13지방선거 필승 결의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호남은 아예 방문 지역에서 빠졌다. 후보 등록 마감(25일)이 코앞인데 전국 17곳 가운데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 3곳만 광역단체장 후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수억 원을 써가며 나가겠다는 사람도 없고, 아무리 등 떠밀어도 한다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구인난을 겪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5·18민주화운동의 상처를 겪은 광주에서는 한국당의 뿌리를 전두환 정권 때 여당이던 민주정의당에서 찾는 게 보통이다. 한국당과 한 뿌리인 만큼 보수정당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호남 현역 의원이 6명 있지만 보수정당으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도 호남 지역에서 아직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대선 후보였던 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호남 지역 득표율은 1∼3%대였다.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간 15% 이상 득표해 선거비용 전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야당이라 출마자를 유인할 카드도 마땅치 않다. 여당 시절엔 낙선하면 다른 공직을 약속하거나 다음 총선 때 비례대표를 약속할 수도 있었는데, 그게 더 어려워졌다. 한국당이 여당이던 2010년 지방선거에선 호남 지역 3곳에서 모두 13∼18%의 두 자릿수 득표를 했다. “지지율이 하락한 다른 지역과 달리 이전보다 3, 4배 지지율이 올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2014년에는 이번과 마찬가지로 구인난을 겪었지만 그래도 후보는 냈다. “당선이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는 남아 있었다. 지방선거 한 달 뒤인 그해 7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보궐선거로 전남 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결실도 수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공천으로 갈 수 있다”는 주장까지 당 안팎에서 거리낌 없이 나온다. 한 발씩이라도 내디뎌서 지역당 이미지를 바꾸자고 했던 그때 도전 정신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전 총장은 “평가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후보를 계속 내 두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당은 이 말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인가.
 
박훈상 정치부 기자 tigermask@donga.com
#호남#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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