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장하준이 말하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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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2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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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제학자 장하준을 존경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이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23가지)를 국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시켜서만이 아니다. ‘23가지’의 서평기사를 소개한 그의 홈페이지를 보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9개 기사 중 단순 소개를 제외한 6개가 결코 좋은 평이라고 할 수 없는데도 당당하게 올려놓은 그의 담대함 때문이다.

외국선 혹평… 국내선 신드롬

‘23가지’는 주류경제학에서 강조해온 시장개방과 자유무역, 세계화의 ‘허구’를 사정없이 벗겨낸다. “영국 권위지 가디언에서 에드 밀리밴드(노동당 대표)가 그를 점심에 초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는 국내 신문 기사만 보면 엄청난 책이 분명할 것 같다.

하지만 진보신문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서버는 “(금융개혁에 대한 그의) 분석은 비현실적이고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평했다. 더타임스는 “그가 말하는 진실은 그가 자유시장주의자를 비판하는 것처럼 객관적이지 않다”고 썼다. 사회주의 전파를 위해 창간된 잡지 뉴스테이츠먼조차 “(그가 제시한) 국가주도 자본주의는 결국 내파(內破)했다”고 지적했다. 장하준이 소개하지 않은 가디언의 서평이나 남아공 매체인 비즈니스데이의 혹평은 옮기기도 죄스러울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경제학자를 폄훼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다만 지난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거부해야 한다”며 야당과 좌파의 정치투쟁에 힘을 실어준 그의 참모습은 알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스로 좌파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장하준은 BBC로부터 좌편향이라고 묘사되는 사람이다. 주류경제학 아닌 이단적(heterodox) 경제학 교수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더타임스는 “조심해서 읽으라”고 경고를 붙여놨다. 규제 없는 시장은 없기 때문에 자유시장이란 없다는 장하준 경제학의 대전제부터 동의하기 어렵다. 법이 없는 국가는 없기 때문에 자유국가란 없다는 말과 똑같은 논리 아닌가.

그가 열거한 23가지의 ‘부분적’ 진실과 틀린 팩트를 일일이 적시하기엔 지면이 모자란다. 당장 우리의 최대 현안인 FTA와 복지 교육에 대한 주장만 봐도 나라와 독자들을 오도(誤導)할 공산이 적지 않다.

그는 18세기 영국과 19세기 미국, 그리고 오늘의 중국을 들며 “자유무역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과거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가 MBC에서 밝혔듯이 FTA는 두 나라 사이에만 자유무역을 하고 다른 나라는 차별하는 무역이다. 선진국과 FTA 하면 우리가 장기적으로 손해 본다는 게 장하준의 애국적 주장인데, 그 말이 옳다면 미국 최대 노조조직은 한국이 손해 볼까 봐 반대하는 거냐고 묻고 싶어진다.

틀린 가치를 옳다고 착각시키나

한미 FTA는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이 우리에게만 활짝 열리는 특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미국시장에서 한국 차와 경쟁하는 일본이 두려워한다”고 했겠나. 그러나 그는 수출과 일자리, 국내총생산(GDP) 증가 같은 계량적 효과뿐 아니라 경쟁을 통해 생산성과 경쟁력도 키울 수 있는 장기적 이익은 외면했다. 영국에 사는 장하준과 그의 아이들은 상관없겠지만 이 땅에 사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겐 너무나 절실한 FTA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는 또 “부자들에게 세금 많이 걷는 스칸디나비아엔 거대한 복지국가와 높은 경제성장률이 공존한다”며 큰 정부를 옹호했다. 하지만 스웨덴이 1950년대까진 시장경제로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고도 그 뒤 과다한 복지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전형적인 국가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거대한 복지로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를 언급하지 않은 건 물론이다.

“교육이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서울대를 나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그가 “고등교육에 대한 집착을 줄이라”고 하는 데는 기가 딱 막힌다. ‘23가지’ 283쪽에서 “균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혜택을 보기 위해선 그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남아공 흑인들은 백인들과 똑같이 보수가 높은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지만 그 직업에 적합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면 소용없다”고 한 것과도 앞뒤가 안 맞는, 별로 학자답지 못한 서술이다.

물론 학문의 자유는 중요하고 ‘23가지’가 자본주의에 대한 시야를 넓힌 점에선 훌륭하다. 글로벌 위기 이후 시장경제와 주류경제학에 대한 반성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 지식인들을 비판한 ‘억지와 위선’이라는 책이 지적했듯이 “그의 주장들은 단순히 틀릴 뿐만 아니라 그릇된 가치를 옳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어서 더욱 걱정이 된다.” 장하준이 말하지 않는 더 많은 것들에 대해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들은 왜 남아공 사람만큼도 말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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