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유연한 상호주의’가 그렇게 두려운가

  • 입력 2008년 3월 31일 20시 04분


참 딱한 북한이다. 어쩜 이렇게도 한결같을까. ‘관망-합의 이행 촉구-특정인 거명 비난-협박’으로 이어지는 대남(對南) 대응 패턴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조금 다른 포맷을 들고 나올 때도 됐는데 이 모양이니 체제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 알 만하다.

북한이 남한의 대선 결과에 처음 반응한 것은 작년 12월 26일 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를 통해서였다. 한 대목을 옮겨보자. “만약 그(이명박 당선인)가 6·15와 10·4선언에 역행한다면 민중의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때만 해도 북은 점잖았다. 관망하면서 기존 합의의 이행을 촉구하는 수준이었다. 이 당선인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도 없었다.

두 번째 반응은 두 달 뒤인 올 2월 29일 나왔다. 조선신보는 ‘이념과 실용은 대치관계에 있지 않다’는 제하의 시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며 그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북 주민의 소득을 3000달러로 올려주겠다는 ‘비핵 개방 3000’ 구상은 “같은 민족을 모독하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엿새 뒤인 지난달 6일 북은 마침내 조평통 대변인을 내세워 이명박 정부를 정면에서 공격했다.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우리 측이 북의 인권 개선을 요구한 데 대해 “파쇼 독재정권의 후예인 남조선 보수집권세력의 극악한 망언”이라고 반발한 것이다. 북의 반발은 개성공단 상주요원 철수, 서해상에서의 함대함 미사일 발사, 김태영 합참의장의 북한 핵문제 대책 발언에 대한 사과 요구, 그리고 30일 조선중앙통신의 ‘잿더미 위협’으로 이어졌다.

보통사람들도 北속셈 알아

북은 아마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더 강도 높은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이나 비무장지대(DMZ)에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의 이런 대응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내외 사정이 그런 모험을 할 만큼 좋지도 않거니와, 남한 정부는 물론 이제는 일반 국민까지도 북의 대남 책동에 관한 한 그 속셈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 10년 동안 북은 남이 왜 햇볕에 집착하는지를 일찍이 간파했다. 그래서 받을 것 다 받으면서도 개혁 개방 요구는 철저히 외면했다. 햇볕정책은 이때 이미 정책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다. 남쪽도 북이 틈만 생기면 도발적인 태도로 나오는 바람에 북의 의도는 물론 후속조치의 순서까지도 외울 정도가 돼버렸다. 이제 웬만한 남한 국민은 봄철에 식량과 비료가 북에 건네지면 여름에 이산가족 상봉이 한 차례 있을 것임을 안다. 식량과 비료가 안 건네지면? 그해 남북대화가 순조롭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상대방이 내가 가진 패를 다 읽고 있다면 게임은 하나마나다. 북은 김태영 합참의장의 발언에 반발하면서 “우리 식의 선제타격이 일단 개시되면 (남조선이)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 말에 남한 사회가 움찔이라도 했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이보다 훨씬 전인 1994년 3월 19일 북측의 ‘서울 불바다’ 발언 때도 남한 사회는 평온하기만 했다. 그 발언마저 한 달 뒤에 김일성 주석이 CNN과의 회견에서 “적절치 못했다”며 철회했다.

상황이 이럴 진대 옛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남한의 새 정부를 흔들고, 미국의 대북정책과 6자회담에 영향을 미치려 한들 통하겠는가. ‘잿더미’보다 더한 협박으로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해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정책의 수위가 낮아지고, 북 인권 개선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줄어들겠는가. 북은 이제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햇볕이 호도한 ‘현실’, 직시할 때

북의 초기 도발에 대한 새 정부의 대응은 비교적 적절했다. 원칙을 지키면서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혹여 햇볕론자들이 “북을 궁지로 몰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면서 “새 정부의 상호주의가 남북관계에 불안정성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상투적인 주장을 하더라도 흔들리지 말기 바란다.

상호주의가 질서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다소간의 불안정성이 생기는 것이 남북관계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햇볕론자들은 그런 현실을 외면하거나 호도했다.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동기에서 이를 지고지선의 대북정책으로 포장까지 했다. 그들이 피해갔던 ‘현실’을 이제는 우리 모두가 직시할 때다. 쥐를 궁지에 몰리도 없고, 쥐가 고양이를 물리도 없겠지만 그게 두려워서 언제까지 현실과 맞서기를 주저할 수는 없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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