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맨츄리안 켄디데이트

  • 입력 2007년 12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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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츄리안 켄디데이트(Manchurian Candidate)’는 걸작 스릴러 ‘양들의 침묵’을연출한 조너선 드미 감독의 2004년 작입니다.이 영화는 우리를 두 번 놀라게 합니다.

먼저 그 황당한 줄거리가 놀랍습니다.

첨단과학기술을 보유한 거대 기업이 유력 정치인의 뇌를 조작해 국가를 좌지우지한다니요….

그런데, 우린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이런 허무맹랑한 사건이 지금 이 시간에도 적잖은 국가에서 실제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말이죠.

이 영화는 현대사회를 야금야금 삼키고 있는 ‘검은 권력’에 관한 신랄한 비판이요

우화입니다.》

[1] 스토리라인

걸프전이 한창이던 1991년 쿠웨이트. 미국의 ‘벤 마르코’ 소령(덴젤 워싱턴)이 이끄는 부대원들은 후세인의 지휘를 받는 이라크군과 맞닥뜨립니다. 치열한 전투 도중 마르코 소령은 누군가가 휘두른 둔기에 맞아 정신을 잃습니다.

12년 후. 마르코 소령의 부대원이던 ‘레이먼드 쇼’ 하사(리브 슈라이버)는 상원의원으로 변신해 있습니다. 이라크군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몸을 날려 동료들을 구한 공적으로 명예훈장까지 받은 쇼는 ‘전쟁영웅’이란 칭호를 등에 업고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합니다.

그의 어머니이자 상원의원인 ‘엘리너’(메릴 스트립)는 “국민이 안보 불안에 떠는 지금은 전쟁영웅이 국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결국 쇼는 하루아침에 부통령 후보가 됩니다.

한편 마르코 소령은 자꾸만 괴이한 꿈과 기억에 시달립니다. 급기야 자신의 어깨에 박혀 있는 정체불명의 마이크로칩까지 발견하게 되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는 엄청난 사실에 직면합니다.

걸프전 당시 소령과 쇼 하사를 비롯한 부대원 모두는 두뇌조작을 당했던 것입니다! 노일 박사를 위시한 과학자 집단은 부대원들의 뇌와 기억을 조작해 ‘쇼가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전쟁영웅’이란 거짓 기억을 심어놓았던 겁니다.

아, 이런 끔찍한 음모는 도대체 어떻게 이뤄진 걸까요?

음모의 배후에는 거대 다국적 기업 ‘맨츄리안 글로벌’이 있었습니다. 대대로 미국 정치권에 가장 큰 후원자 역할을 해 온 이 기업은 쇼의 어머니인 엘리너와 결탁해 이 모든 계략을 꾸며 왔던 것이죠.

[2] 핵심 콕콕 찌르기

이 영화는 주장합니다. 한 국가를 움직이는 거대 권력은 세 집단이 이루는 음험한 카르텔(cartel)에 의해 기획·형성·유지·발전된다고 말입니다. 그 세 집단의 정체는 뭔가요? 첫째는 엘리너 상원의원으로 대표되는 ‘정치권력’이고, 두 번째는 노일 박사로 상징되는 ‘과학권력’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맨츄리안 글로벌처럼 막대한 자금력을 지닌 ‘기업권력’이었습니다.

영화에 따르면, 세 집단의 이해관계는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권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돈으로 과학기술을 사서 정치인을 세뇌합니다. 과학기술의 극단까지 가보고 싶은 과학자는 기업의 막대한 자금을 받아 인간 두뇌를 제멋대로 조작하는 비윤리적인 실험을 끝내 완성하려 합니다. 그리고 돈을 필요로 하는 정치인은 기업과 결탁해 자신의 권력을 영원히 유지하고자 합니다.

이들 세 권력집단이 ‘검은 결탁’을 할 수 있었던 접점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마르코 소령을 돕는 착한 과학자(브루노 간츠). 그가 던지는 짧은 대사 속에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돈이 왕이야(Cash is king)!”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막대한 자금을 가진 거대 기업은 정치권력에 대한 지배력을 잃지 않는다고 이 영화는 주장합니다.

[3] 더 깊이 생각하기

궁금합니다. 이런 몹쓸 결탁을 우리 평범한 시민들은 왜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요? 탐욕스러운 기업권력과 유착된 정치인들을 우리는 왜 가려낼 수 없는 걸까요? 그건 바로 정치인들을 견고하게 둘러싸고 있는 ‘조작된 신화(神話)’ 때문이라고 이 영화는 말합니다.

사실 쇼는 이렇다 할 경력도 신념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쟁영웅’이란 조작된 이미지 하나로 일약 부통령 후보로 발돋움하고 유권자들의 몰표를 얻습니다. 그만큼 유권자는 영리한 듯하지만 무지하고, 복잡한 듯하지만 단순합니다. 정치인의 의도된 이미지 앞에 어이없이 냉철한 판단력을 잃고 마는 게 또한 유권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이런 주장은 쇼가 마르코 소령에게 독백처럼 털어놓는 다음 대사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인생은 참 기괴해요. 이 선거운동, 정치…. 내 모든 공적인 인생과 가면을 쓴 나…. 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사람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웃어요. 그리고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전혀 낯선 사람들과 악수를 하죠. 하지만 그들은 정작 내가 권력의 핵심부와는 관계없는, 꼭두각시란 사실을 까맣게 몰라요.”

아, 절망입니다. 그럼 올바른 정치인, 올바른 기업인, 올바른 과학자가 인정받을 그날은 요원하단 말인가요? 아닙니다. 영화는 귀띔합니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고. 마르코 소령은 말합니다.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그들(사악한 권력자들)이 결코 건드릴 수 없는 것이 있어. 우린 그것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게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야.”

뗌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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