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자본주의 맹아론과 식민지 수탈론에 대해 통계자료 분석으로 의문을 제기해 오던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연구에 국사학계에서 오랜만에 반격을 시도했다. 지난달 30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학술대회 ‘조선왕조 재정과 시장’에서다.
이날 양쪽이 가장 크게 ‘접전’을 벌인 분야는 조선의 물가.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좌장 격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왕실 소속 기관으로 궐내에 식료품을 공급하던 명례궁의 지출 명세를 바탕으로 19세기 92개 품목의 가격 변동을 조사한 결과 “품목의 절반이 가격 변동이 없는 억압적 시장 체제”라고 결론을 내린 것. 이에 대해 양진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원은 “왕실이 민간과 같은 가격으로 물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분석”이라고 비판했고, 고동환 한국과학기술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도 1886년 면주전 상인들이 명례궁에 가격을 시가로 지불해 달라고 요구한 고종 23년(1886년) 12월 21일의 승정원일기를 근거로 반박했다. 이에 이 교수는 “국가 공식 기관이 아닌 왕실의 사적 기구가 시가보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팽팽히 맞섰다.
조선 중앙정부의 경제 정책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박기주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대동법 이후에도 공납제가 계속 유지되었다”며 조선 정부의 명목상 개혁을 지적한 반면 김선경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원은 “대동법이 재정 일원화에 일조했으며 시장을 고려했던 개혁안”이라고 반격했다.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중앙정부의 비대한 재정을 비판하자 국사학계 측은 “수입을 토대로 얘기할 뿐 지출 명세에 대한 연구가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속단하기 어렵다”(김덕진 광주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라고 반론을 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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