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정치

청년을 위한, 청년에 의한 한국의 국제정치관이 필요하다 [우아한 청년 발언대]

입력 2019-01-16 13:41업데이트 2019-10-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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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하나의 자기완결적인 언어체계로서 이론가가 처한 사회적 배경에 따라 특정한 정치적 관점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즉 E.H 카가 ‘20년의 위기(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에서 지적했듯이 이론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이론의 정치성은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 국제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현실적 문제이다. 이론 가운데서도 국제정치이론은 국제정치현실을 설명하는 틀이다. 이론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흐름이 가지는 뼈대를 발견하고 일관된 태도로 현실을 인식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곧바로 현실의 국제정치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이어지기에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이론이 갖는 역할은 여전히 막중하다.

최근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몽’ 구상 하에 ‘중국 특색의 국제정치이론’을 구체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특색의 국제정치이론’은 주권국가들 간의 평등한 국제법 체제를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강제한 것으로 보고 역사 속에서 훨씬 더 오랫동안 존재했던 ‘단일한 천하관의 중화질서 논리’를 현대화하고자 한다. 이전 글[우아한 청년 발언대]청년들이 생각하는 ‘국익’은 무엇인가?에서 다루었던 한국의 국익을 고려한다면 중국적 국제정치이론은 명백히 우리나라의 이익에 위협이 된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배적 국제정치이론들도 이론이 탄생한 국가의 이익과 관점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론의 정치성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입장에서 국제정치를 설명하고 독자적인 외교정책으로까지 이어져 국익을 수호할 수 있는 한국적 국제정치이론이 필요하다.

●현대 국제정치학의 분류와 핵심 요소들

현재 대학에서는 다양한 국제정치 이론들이 강학의 형태로 전수되고 있다. 현실주의는 국제정치의 권력정치적 측면을 강조한다. 자유주의는 국제정치의 무정부성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의 협력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구성주의와 역사사회학은 모두 현대 거대이론들을 메타이론적 차원에서 비판하고 국제정치의 동태적 양상을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받은 국제정치이론으로는 종속이론, 세계체제론, 그람시주의 등이 존재한다. 국제사회학파는 국제정치를 단순히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들 간의 투쟁이 아니라,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는 주체들 간의 사회적 관계로 파악하는 그로티우스의 시각에 기초한다. 탈근대이론은 담론과 권력 간의 상호관계에 주목하여 근대 국제정치이론이 소외시킨 부분을 발굴하고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근대 국제정치이론의 전제에 다시 감정, 공감의 개념을 도입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모든 이론은 서구사회, 나아가 미국과 유럽의 지적 산물로 동양이나 한반도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결국 오늘날의 청년세대가 해야 할 일은 앞서 간략하게 소개한 국제정치이론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의 독자적인 국제정치관을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위한 3단계의 방법론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한국적 국제정치이론 정립의 3단계 방법론

첫 번째로 생소한 국제정치이론의 영역이 많이 개방되어 일반 대중이 국제정치이론을 쉽고 간단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논쟁과 개별 외교사안에 대한 대중의 논의는 매우 활발한 편이지만, 전체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인 국제정치이론을 교양 수준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기에 이에 대한 논쟁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인문학 붐이 불어 쉽게 접할 수 있는 양질의 인문학 서적들이 많이 출간되었는데 이를 참고하여 국제정치 현실을 큰 틀에서 조망하는 국제정치이론을 간단하고 쉽게 설명하는 교양 저술들이 많이 나온다면 한국적 국제정치이론 정립의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사회 전체의 기본적 이해가 충족된 뒤에는 기존 국제정치이론을 ‘해체’하고 그 명제와 개념들을 새로운 기준으로 분석 및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단기간의 국제정치를 분석할 때에는 정태적 분석틀인 현실주의, 자유주의를 차용하지만 장기의 거시이행을 분석할 때에는 역사사회학과 구성주의를 차용하는 절충적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고,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국제사회학파의 ‘무정부 속 사회 형성 모델’을 활용할 수도 있겠다. 이 전체 과정을 견인하는 데에는 탈근대이론과 비판이론 등의 메타이론적 검토방법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사회가 기존 국제정치이론을 객관적 관점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독자적인 국제정치관 수립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구한말 ‘정립론’의 현대적 변용 가능성

마지막으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빼는 ‘사단취장’의 자세로 기존 국제정치이론을 정리한 후 한국의 특수한 경험과 관념을 더하여 한국적 국제정치이론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19세기말 청일전쟁 이후 중화질서가 무너지던 무렵 한국에서 자생했던 ‘정립론’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것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정립론’은 큰 틀에서 대외적으로 아시아가 연대해야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한중일 삼국 간의 세력균형을 이루어 ‘세 개의 다리가 안정적으로 솥을 받쳐야 함’을 주장했던 이론이다. 당시 독립신문에는 일본의 동양평화론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정립론’의 원형이 드러나는 기사가 여러 번 실렸다.

정립론에 주목하는 이유는 정립론이 여러 현대 국제정치이론의 접점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합의된 세력균형을 강조하는 모습에서는 고전현실주의자인 모겐소의 처방을, 대외적으로 지역의 연대를 주장하는 모습에서는 자유주의의 경제협력과 국제사회학파의 ‘국제사회’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정립론은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을 통해 강대국 틈바구니 속 한국의 안보를 확보하면서도 공동의 이익, 가치 하의 협력을 통해 해외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의 경제를 살리는 외교정책을 뒷받침할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국제정치이론 정립은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관된 사고체계로서 이론은 변화하는 국제정치에서 최대한의 국익을 위한 외교정책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한국적 국제정치이론의 개발이 갈수록 필요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탈냉전기에 태어나 정체성의 정치가 심화되어 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 세대가 스스로의 지식과 독자적 경험을 살려 한국의 국제정치관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독창적이고 튼튼한 논리를 갖춘 외교정책을 탄생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장성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16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각 국제정치이론 상세 설명

:현실주의: 모겐소는 대표적인 고전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국가 간의 정치(Politics Among Nations)’를 통해 권력욕은 무제한적인 인간의 본성이며 정치적으로 합의된 세력균형을 통해 이를 규율해야 함을 주장했다. 반면 ‘국제정치이론(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을 통해 신현실주의를 제창한 케네스 월츠는 무정부 상태에서 국가들 간의 힘의 배열이 구조를 만들어내고 이 구조가 국제정치의 양상을 설명하는 과학적 국제정치이론을 만들고자 했다. 최근에는 월츠의 ‘기능적으로 미분화된 국가’ 가정을 대체하여 신현실주의에 각 국가의 특수성을 반영하려는 신고전현실주의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유주의: 현대 자유주의의 뿌리는 크게 민주평화론, 시장평화론, 제도주의로 나뉜다. 먼저 마이클 도일은 칸트의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절차적, 규범적 기제에 의해 전쟁하지 않음을 주장했다. 아담 스미스를 시조로 하는 시장평화론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게 골자이다. 제도주의의 대표 학자로는 로버트 코헤인을 들 수 있는데 그는 국제정치에서 제도를 통해 ‘정보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면 국제협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한편 코헤인과 나이는 앞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협력을 종합한 ‘복합상호의존론’를 정립했고 이는 오늘날 신자유주의로 잘 알려져 있다.

:구성주의: 알렉산더 웬트는 ‘국제정치의 사회적 이론(Social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을 통해 국제정치의 문화와 국가의 정체성이 구성되는 면에 주목해야 함을 주장했다. 웬트에 따르면 국제정치의 무정부 상태에서도 홉스적, 로크적, 루소적 등 서로 다른 문화의 구성이 가능하고, 국가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각 국가의 정체성을 고려하여 국제정치의 양상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사회학: 국제정치의 사회구조와 개념의 역사성을 강조하여 국제정치의 거시적 이행이 갖는 동태적 흐름을 포착하고자 한다. 근대 이행을 분석하면서 역사사회학은 ‘주권’ 개념이 대외적 독립성, 내정불간섭, 주권평등 개념 등을 순차적으로 포섭하여 완성되었음을 강조한다. 또 역사사회학자 만(Mann)은 이념, 군사, 경제, 정치 네 개 층위의 변화를 종합한 IEMP모델을 활용하여 국제정치의 거시 이행을 설명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탈근대 이행을 분석하는 데에도 유용한 부분이 있다.

:마르크스학파: 남미학자들에 의해 제창된 종속이론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 주변부에 대한 중심부의 착취 구조를 고발한다. 임마누엘 월러슈타인은 이를 발전시켜 ‘세계체제론(The Modern World System Ⅰ,Ⅱ,Ⅲ)’을 통해 근대 국제정치는 단일한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 이어지는 착취의 사슬 구조를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람시주의는 마르크시즘의 개념 중 상부구조에 주목하여 전 세계적 착취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지배계급의 문화적, 이념적 헤게모니를 분석 및 해체하고자 하였다.

:국제사회학파: 대표 학자인 헤들리 불은 ‘무정부사회(The Anarchical Society)’를 통해 국제체제/국제사회/세계사회를 구분하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본성에 의해 국가들 간의 이익, 이념, 가치, 제도의 공유가 일어나 무정부 상태에서의 질서가 가능함을 역설했다.

:탈근대이론: 푸코와 데리다는 공통적으로 사회적, 역사적으로 형성된 ‘지식의 조건들’에 의해 단일한 진리 개념이 언어의 형태로 고착화되는 모습을 비판했다. 제임스 덜 데리안과 리차드 애슐리는 ‘담론의 해체’를 통해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계보학’을 강조한 한편, 국제정치를 공감과 감정이입 영역의 정치로 보는 감정적 전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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