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소련 붕괴 30년…중국은 무엇을 배웠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1일 16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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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이 번영된 민주사회에서 살게 될 날이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1991년 12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사임 연설을 이렇게 마쳤다. 다음 날 소련최고회의는 우크라이나 등 15개 신생 독립국의 독립을 공식 승인하며 소련 해체를 선언했다.

미하일 고르파초프 전 소련 대통령. 출처: 위키미디어
미하일 고르파초프 전 소련 대통령. 출처: 위키미디어


30년 후인 2021년 12월 26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소련 붕괴의 교훈이 중국 사회주의 발전을 성공적으로 돕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서구에선 소련이 붕괴한 이유를 군사적 팽창, 미국과의 패권 경쟁, 계획경제와 실패한 경제개혁으로 보지만 중국의 판단은 다르다.
● “소련은 사회주의를 배신해서 망했다”
중국의 주류 해석은 사회주의가 옳다는 거다. 덕분에 소련은 파시즘을 패배시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전후 미국과 겨루는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고 글로벌타임스는 주장한다.

리셴밍 전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은 “우리가 수많은 연구 결과 도달한 결론은, 소련이 망한 진짜 이유는 니키타 흐루쇼프부터 고르바초프까지 소련 지도부가 점차 사회주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며 이렇게 분석했다.

소련은 ‘인민에 대한 봉사’라는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고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동지’들을 위협했다. 군사적 팽창을 추구해 인공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렸지만 식량과 생필품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 사회 갈등이 증폭됐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자유화 서구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그 또한 실패로 끝났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왼쪽)와 고르바초프 대통령 집권 당시인 1991년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국영상점 앞에서 지친 채로 기다리는 모스크바 시민들. 동아일보DB
소련이 세계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왼쪽)와 고르바초프 대통령 집권 당시인 1991년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국영상점 앞에서 지친 채로 기다리는 모스크바 시민들. 동아일보DB

● 더 강한 공산당으로 달려간 중국
그들은 소련 해체가 ‘중국을 위한 백신’이라고 했다.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교훈을 배워 중국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반면 미국은 소련의 교훈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고도 했다.

지금의 미국이 해체 직전의 소련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중국이 소련 해체에 사로잡혀 있는 건 분명하다. 시진핑이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해 광둥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질문한 것이 “왜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당은 붕괴했는가”였다.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취임 직후 광둥성을 시찰하는 시진핑. 신화 뉴시스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취임 직후 광둥성을 시찰하는 시진핑. 신화 뉴시스

“그들은 이상과 신념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답이다. 그래서 더 강한 사회주의로 매진했고, 더 센 1인 독재로 달려가는 추세다. 중국공산당이 11월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를 폐막하며 발표한 ‘역사결의’엔 개인숭배 금지, 종신제 금지 등 독재에 제동을 걸 문구도 완전 사라졌다.
● 정말 리더십 때문에 소련이 망했다면?
최근 ‘붕괴: 소련의 멸망(Collapse: the fall of the Soviet Union)’을 출간한 역사학자 블라디슬라프 주복은 군사적 팽창이나 경제 실패보다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을 소련 몰락의 큰 이유로 꼽는다.

역사에서 군사제국이 전쟁에서 패하지 않고 사라진 경우는 없다. 그러나 글라스노스트가 도입돼 생각을 말하고 비판할 수 있게 되면서 소련은 달라졌다. 특히 스탈린 치하 수백만 명이 사망한 역사기록까지 공개되자 공산당 통치의 이데올로기와 합법성은 흔들렸다.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며 자유와 복지에도 취약한 일당 독재를 견딜 국민은 없었다.

주복은 고르바초프의 나이브한 리더십, 캐릭터, 믿음이 소련의 자멸을 불러왔다고 결론짓는다. 거꾸로 보면, 시진핑처럼 인민을 꽉 틀어잡아야 독재정권이 유지된다는 얘기다. 리더십은 그래서 중요하다. 해피 뉴 이어.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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