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문전 뉴스와 100만 원짜리 고무신선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4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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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화국 때는 ‘땡전(全) 뉴스’였다. 방송사는 밤 9시를 알리는 시보가 ‘뚜 뚜 뚜 땡’ 하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하는 뉴스를 내보냈다.

문재인 정부에선 ‘문전(電) 뉴스’다. 문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전화(電話)를 하는 뉴스가 이틀에 한번꼴로 등장한다. 우리 정부가 코로나19 대처를 너무나 잘하고 있어 세계 각국에서 도움 요청이 쏟아진다니 가슴이 벅찰 지경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대통령. 동아일보DB·청와대 제공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대통령. 동아일보DB·청와대 제공

“앞으로도 정상통화를 희망하는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에게 위로와 자긍심을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청와대는 친절히 설명했다. 적어도 총선 전날인 14일 까지는 문전 뉴스가 계속된다는 얘기다. 안물안궁(안 물어보고 안 궁금하다)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

● 100만 원 받으려면 여당 찍어라!

과거로 돌아간 건 문전 뉴스만이 아니다. 여당 찍으라며 고무신 나눠주던 자유당 때 선거가 돌아왔다. 이번엔 무려 100만 원 짜리다. 코로나19에 대응한 긴급재난지원금을 국민의 70%에게 준다는 거다.

단, 총선이 끝난 다음에! 7조1000억 원의 추경 예산이 무사히 국회를 통과하려면 더불어민주당은 과반 이상 득표하거나 최소한 제1당이 돼서 국회의장을 확보해야 한다. 즉, 돈 받고 싶으면 여당 찍으라는 소리다.

지난달 말 열린 당정청 협의회가 이를 입증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하자고 모처럼 할 소리를 하자 여당이 “답답한 소리만 한다”며 언쟁을 벌였다는 거다. 국민의 80%에게 똑같이 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은 ‘총선도 다가오는데 당의 입장을 정부가 수용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압박했다”고 심지어 한겨레신문이 보도를 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당정청 협의회. 왼쪽부터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이낙연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동아일보DB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당정청 협의회. 왼쪽부터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이낙연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동아일보DB

● 진짜 어려운 국민은 지원 받지 못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건대, 나는 코로나 긴급재난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세 때 페스트가 이랬을까 싶어지는 이 기막힌 사태로 인해 일이 없어지거나, 급전이 필요해지거나, 폐업을 하게 된 국민들은 세금으로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별 어려움이 없는 사람도 괜히 지원금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공공기관처럼 철밥통 직장에 다니면서 정년까지 잘릴 걱정도 없는데 정부가 피 같은 예산을 뿌릴 이유는 없다. 공돈 싫어할 사람은 없지만 한정된 재원에서 나온 지원금인 만큼 꼭 필요한 사람, 더 어려운 사람에게 돌아가야 합당하다.

더구나 3월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한다는 건 공무원 편의주의다. 최근 직장을 잃거나 휴직을 당해 월급 못 받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청소도우미처럼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수입이 급격히 줄어든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에 대해선 명확한 기준도 공개되지 않았다.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기준 브리핑. 뉴시스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기준 브리핑. 뉴시스

현금 아닌 지역상품권이나 전자화폐로 주는 것도 문제다. ‘사회적 거리 지키기’ 관두고 전통시장 가서 뭘 사라는 의도다. 어떤 집에선 아이들 학원비가 아쉬울 수도 있다. 전자화폐를 쓸 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긴급지원금이 가장 절실한 우리 집은 손가락 빨고 있는데 멀쩡한 옆집에선 공돈을 받는다면 전 국민이 열불 날 판이다.

● 국민을 분리 지배하는 나쁜 선거정치

선거 전이니 돈만 뿌리면 개돼지는 무조건 좋아할 것으로 믿는, 국민 편의나 선택권은 눈곱 만큼도 고려하지 않는 탁상행정이다. 국민을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어 분리지배하려는 의도라면 더욱 사악하다. 문재인 정부는 상위 30%를 적으로 여긴다는 선전포고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물론 선진국도 긴급재난구호를 한다. 독일에선 실업신고를 하면 소득 확인 없이 실업수당을 주도록 했다. 실업보험을 안 든 사람도 준다. 세입자는 임차료 체납했다고 계약 파기 안 당하게 9월까지 확실히 보호해준다. 자영업자는 직원 수에 따라 일회성 차등지원금을 주되 3개월 이내 쓰다 남은 돈은 상환하게 했다.

세계 최초로 사회보장제도를 시작한 독일이니 세심하고 꼼꼼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독일도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

● 히틀러를 등극시킨 ‘돈 선거’ 불러내나

그토록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독일인들이 어떻게 히틀러를 숭배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선동적 연설만으로는 안 넘어간다.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결국 ‘돈’이다. 1933년 3월만 해도 히틀러 지지율이 44%였는데 아우토반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달라졌다. 지지율이 마구 치솟으면서 11월 선거에서 압승을 했다(물론 나치 빼고 다른 정당은 해산시켰지만). 아우토반이 지나가는 지역일수록 히틀러 반대가 빠르게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아돌프 히틀러. 동아일보DB
아돌프 히틀러. 동아일보DB

그렇게 간사한 것이 사람이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는 도민들에게 1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발표한 뒤 부천시장이 이견을 내놓자 “부천은 빼겠다”고 협박을 했다. 부천시장이 바로 잘못했다고 꼬리를 내려 넘어갔지만 민주당 치하에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제 주머니에서 나온 제 돈도 아니면서 국민을 타락시켜서는 한국판 히틀러가 나올까 우려스럽다. 집권 3년 동안 이룬 것이 없는지 문전 뉴스나 날리면서, 그러고도 자신 없어 100만 원짜리 고무신까지 뿌리는 선거로 나라를 망치진 말아야 한다. 코로나19가 터지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는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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