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가 미국 패션그룹 카프리홀딩스로부터 베르사체를 약 13억8000만 달러(약 2조58억 원)에 인수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프라다는 10조 원대 매출 규모의 명품 그룹으로 발돋움하며 다시 ‘그룹화 전략’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프라다 창업 일가의 승인이 지연됐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소식통을 인용해 인수가 최종 확정됐다고 전했다. 인수 절차는 2025년 하반기 완료가 예상된다.
안드레아 구에라 프라다그룹 CEO는 “베르사체는 프라다 및 미우미우와는 전혀 다른 고객층을 보유한 브랜드이며 이번 인수를 통해 그룹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우미우의 성장 사례를 베르사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프라다는 1990년대 후반 헬무트랭, 펜디 등을 인수하며 명품 그룹화를 시도했으나, 부채 증가와 경영 부담으로 대부분 브랜드를 매각하고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선회했다. 이후 프라다, 미우미우, 영국 슈즈 브랜드 처치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단순화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명품 산업은 다시 대형 M&A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LVMH는 티파니를 약 20조 원에 인수했고 케어링도 발렌시아가, 생로랑 중심의 재정비에 속도를 냈다. 프라다는 이번 베르사체 인수를 통해 다시 확장 국면으로 전환했다.
베르사체는 1978년 지아니 베르사체가 설립한 브랜드로 과감하고 관능적인 스타일로 1990년대 명성을 얻었다. 창업자 사망 이후 도나텔라 베르사체 체제로 유지돼 왔지만, 명확한 리브랜딩에는 실패했다. 2018년 카프리홀딩스에 약 21억 달러에 인수된 이후에도 브랜드 가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최근엔 신임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다리오 비탈레 체제로 전환됐다.
프라다는 베르사체가 갖고 있는 이질적 감성을 오히려 강점으로 봤다. 기존 프라다 및 미우미우가 미니멀하고 정제된 이미지라면 베르사체는 전혀 다른 정체성으로 소비자층을 넓힐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번 인수가는 13억8000만 달러(약 2조58억 원)로 2018년 대비 크게 낮아진 수준이다. 프라다 입장에서는 낮은 밸류에이션에 ‘잠재력 있는 자산’을 확보했다는 전략적 의미도 크다.
프라다는 베르사체의 조직 구조를 대폭 변경하기보다는 유통 채널 조정과 브랜드 리포지셔닝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프라다 그룹의 글로벌 인프라와 디자인 감각을 접목해 브랜드 고급화를 시도하고 북미 중심의 유통 전략을 아시아·유럽으로 다변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리스크도 존재한다. 베르사체 특유의 강렬한 브랜드 이미지는 프라다그룹 내 다른 브랜드와의 정체성 충돌을 야기할 수 있고 브랜드 재건에는 상당한 시간과 자금이 소요될 전망이다.
한편 프라다 주가는 인수 발표 직후 홍콩 증시에서 약 5% 상승했으나 최근 5거래일 기준으로는 7% 하락했으며, 카프리는 뉴욕 증시에서 일시적으로 30% 이상 상승한 후 하락세로 전환됐다.
이번 인수는 프라다가 단순히 브랜드 하나를 더한 것이 아니라 다시 명품 시장의 주도권 경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상징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선택과 집중에서 벗어나 프라다는 이제 다시 복수 브랜드 기반의 그룹 전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명품 산업이 ‘독립 브랜드’에서 ‘메가 그룹’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프라다가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베르사체라는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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