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위험’ 주택 11곳에 주민 342명 그대로 거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5일 03시 00분


감사원, 최하등급 건물 방치 적발
사용금지-주민대피 의무 있는데도… 지자체서 방치, 국토부는 점검 안해
취약계층 이주 엄두 못내 머물러… 임대주택 알선, 부산 동구 표창 받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전경. 2014.9.2 뉴스1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전경. 2014.9.2 뉴스1
붕괴 위험이 있어 건축물 안전진단에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은 전국 아파트와 연립주택 11곳에 342명이 살고 있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지방자치단체와 국토교통부는 E등급을 받은 건물을 사용 금지하거나 주민을 대피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방치해 왔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국토부를 상대로 “지자체가 안전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관리·감독 업무를 철저히 해달라”고 기관 주의를 요구했다. 건물 등에서 사고가 날 경우 조사를 도맡아야 하는 국토부의 중앙시설물 사고조사위원회도 2008년 도입 후 17년 동안 한 번도 가동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 붕괴 위험 큰데 ‘이주 협의’ 어렵단 이유로 방치

감사원이 4일 공개한 ‘시설물 안전점검 진단제도 운영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건축물 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아 재난 위험시설로 분류됐는데도 재건축이나 재개발, 철거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공동주택은 전국 8개 지자체에 총 11곳(23동)으로 조사됐다. 또 이곳엔 감사 당시였던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주민 342명(총 213세대)이 거주하고 있었다. 5곳은 지자체가 건물 사용을 금지하는 긴급 안전조치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주민들이 이주하지 않고 있었고, 6곳은 아예 행정명령도 내려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1985년 지어진 경기 부천시의 대도연립은 천장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철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 곳곳에 금도 가 있었다. 이 연립주택은 2015년 3월 지자체 안전 진단에서 E등급을 받았지만 9년이 넘도록 11명(8세대)이 살고 있었다.

1969년 준공돼 2022년 E등급으로 판정된 부산 영도구의 신선아파트는 외벽의 콘크리트가 곳곳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곳은 전체의 70%인 45세대가 전·월세를 사는 임차인이었다. 그런데 아파트가 E등급 판정을 받은 뒤에도 임차인 수는 계속해서 늘었다고 한다. 감사원 관계자는 “취약 계층 노인이나 같은 비용으로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힘든 영세 임차인들이 입주해 있었다”고 전했다.

현행 시설물안전관리특별법 시행령은 건축물 안전등급을 A∼E까지 5개 등급으로 나누고 있는데, D·E등급을 받은 건물은 붕괴 위험이 큰 재난 위험시설로 분류된다. E등급 판정이 내려지면 지자체는 법에 따라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하고, 국토부는 이를 점검하고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영세 임차인인 주민들과 이사를 협의하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자 지자체와 국토부가 이들을 대피시키지 못하고 상황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구청 직원이 재난기금 활용해 이주시키기도

이번 감사에선 E등급 판정을 받은 주택에 사는 주민들이 임대주택을 지원받도록 도와 이주시킨 사례도 확인됐다. 부산 동구는 관할 연립주택이 E등급 판정을 받자 주민간담회를 열었고, 재난관리기금을 활용해 주민들의 이주 자금을 지원했다. 동구 직원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찾아가 취약계층 세대가 임대주택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협의를 이끌어냈다. 동구 직원들은 임대주택을 지원받지 못하는 세대를 위해 직접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돌아다니면서 이주할 곳을 찾아다녔다. 감사원은 이 사례를 감사원장 표창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국토부에 “주민 대피를 위한 이주비 지원을 현장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에 내용을 반영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건축물 안전진단#붕괴 위험#E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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