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대 이집트인의 평범한 일상 엿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4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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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열두 달/도널드 P. 라이언 지음·우진하 옮김/308쪽·1만8000원·타인의사유

기원전 15세기 나일강 범람기의 테베 한 마을. 어느 농부가 집에 들어가려다가 순간 멈칫한다. 피라미드 공사에 농부들을 징발하려고 가가호호 방문하던 관리를 멀리서 발견한 것. 그는 본능적으로 길을 우회해 집에 몰래 들어간 뒤 자신의 아내에게 속삭인다. “남편이 요양차 먼 친척 집에 갔다고 말하시오.”

고대 이집트에서 1년은 나일강의 범람을 기준으로 세 시기로 구분됐다. 그중 나일강이 넘쳐 밭이 물에 잠기는 7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까지는 힘든 농사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기간이었다. 하지만 파라오의 나라는 백성들을 마냥 놀리지 않았다. 농사 대신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나 신전을 건설하는 노역에 이들을 동원한 것. 백성들은 파라오와 귀족들의 착취에 불만을 품었겠지만,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에도 신으로 군림하는 파라오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결국 순종했다.

이 책은 미국 고고학자인 저자가 고대 이집트의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년∼기원전 1069년)를 배경으로 평범한 민초들의 삶을 1년 단위로 재구성한 팩션 역사서다. 독자들에게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농부, 어부, 옹기장이, 미라 제조 장인 등 다양한 직업의 가상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지배층의 정치와 문화, 인식 등 주류 질서에 천착해온 기존 역사·고고학계의 연구가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문화 등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최근 바뀌고 있는 것과 맞물려 주목할 만한 책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제국의 열두 달#고대 이집트인#평범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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