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로를 가득 메운 ‘오월 정신’… 43년전 그날처럼 시민이 함께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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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추모 분위기 절정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가 ‘끝까지 우리들은 정의파다’를 주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가 ‘끝까지 우리들은 정의파다’를 주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광주에서는 오월 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잇따라 열려 추모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이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이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날 오전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광주 동구 내남동 지한초교 학생들이 애국가를 제창했다. 올해로 개교 6년째인 새내기 학교 학생들이 5·18기념식장에 오른 것은 1980년 5·18 당시 광주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과 관련이 있다.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은 전남도청을 시민군에게 빼앗긴 계엄군이 광주 봉쇄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5월 23일 계엄군은 광주와 화순을 오가려 주남마을을 지나던 버스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찰나의 순간 쏟아진 총격에 승객 18명 중 15명이 숨졌다. 계엄군은 생존한 부상자 3명 중 2명을 끌고 가 총살했고 당시 17세 여고생이던 홍금숙 씨만이 생존했다.

국가보훈처는 43년 전 이 사건을 기념식에서 조명하고자 했다. 동구 지원2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주남마을 인근 내남지구에 사는 초등학생을 수소문했고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애국가를 부르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남마을의 아픈 역사를 알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5학년생 5명과 3학년생 3명이 모였다. 이들은 1주일 넘게 연습을 한 뒤 이날 기념식에서 영롱한 목소리로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17일 전야제에서 시민들은 5월 정신을 통해 현재의 정의를 실천하자는 주제로 펼쳐진 공연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5월 그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전야제에서 43년 전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지키다가 숨진 시민군 고 이정연 열사가 광주의 시조(市鳥)인 비둘기로 환생해 미래 세대를 대표하는 10대 주인공 ‘산하’와 만나 펼쳐지는 총체극이 눈길을 끌었다. 이 열사는 미래 세대에게 예향, 미향, 의향으로서의 광주를 두루 소개하며 자긍심을 일깨웠다. 맛의 도시 광주를 소개하면서 광주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주먹밥’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참여형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오후 7시부터 2시간 30분 동안 펼쳐진 총체극은 노래패의 ‘철망 앞에서’ ‘아름다운 강산’ ‘아리랑’ 열창을 할 때 절정에 달했다. ‘우리가 모두가 광주고 광주의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갑니다’라는 자막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5·18 전야제가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돼 시민들의 눈길을 끈 것 같다”며 “43년 전 그날처럼 앞으로는 동네별로 전야제에 참여해 시민 모두가 함께하는 행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광주를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27)는 전야제 행사를 멀리서 지켜봤다. 전 씨는 “언젠가는 가족들과 같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며 홀로 5·18 전야제를 찾은 소감을 밝혔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몰리면 다른 시민에게 누를 끼칠까 봐 대열 끄트머리에서 조용히 공연과 행사를 관람했다. 전 씨는 “많은 분들이 할아버지 때문에 힘들게 사신다. 그런 상황에서 저에게 돌을 던져도 할 말이 없는데 오월 어머니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드린다”며 거듭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는 5·18 전야제가 열리기 전 주먹밥 부스를 찾아 오월 어머니들과 주먹밥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광주의 대동정신을 배웠다.

17일 광주 공직자들도 민주평화대행진에 참여해 추모 열기를 끌어올리는 데 힘을 보탰다. 광주시 공직자 400여 명은 이날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민주평화대행진에 참여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최근 정례 조회에서 5·18의 의미를 설명하며 직원들의 참여를 제안해 이날 처음으로 공직자들이 대규모로 대열에 동참했다.

강 시장을 필두로 한 공직자들은 수창초교에서 5·18민주광장까지 금남로를 걸으며 1980년 당시 시민들이 꽃피운 오월 정신을 되새겼다. 광주시는 이날 시청 앞에서 사랑의 헌혈 행사도 열었다.

광주시와 ‘달빛동맹’을 맺은 대구시는 제43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김종한 행정부시장과 하병문 시의회 부의장, 2·28기념사업회 관계자 등 대구시 방문단 20명을 보내 희생자를 추모했다. 대구시는 달빛동맹이 시작된 2013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대표단을 파견해왔다. 광주시와 대구시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직후 양 행정부시장 주재로 달빛동맹 교류 협력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도 열었다.

17일 제주 서귀포시청에 광주와 제주의 아픈 그날을 함께 기억하기 위한 조형물이 설치됐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지부와 서귀포시오월걸상위원회는 이날 서귀포시청 동측 시민쉼터 공간을 ‘평화의 햇살이 머무는 뜨락’으로 조성하고 ‘제주4·3과 오월 걸상 제막식’을 열었다. 이 쉼터는 제주도4·3사건 당시 희생된 영령들을 상징하는 동백꽃과 민주·인권·평화의 상징인 오월 어머니를 형상화해 ‘제주의 사월과 광주의 오월, 기억하고 함께하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3년 5월 18일에 태어난 11세 초등학생 가족이 5·18기념재단에 518만 원을 기부했다. 문산초교 4학년 신준호 군은 16일 어머니 정서연 씨와 함께 광주시교육청을 방문해 5·18기념재단 기탁금으로 518만 원을 전달했다. 신 군 가족은 지난해 5월에도 전남대에 518만 원을 기탁했다. 신 군의 부모는 아들이 5월 18일에 태어난 것을 뜻깊게 생각하고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함께 공부하는 과정에서 기부를 하게 됐다고 한다.

5·18기념재단 오월길문화사업단은 5·18민주화운동과 광주만의 문화관광자원을 연계한 새로운 ‘오월길 광주천 코스’를 개발해 22일부터 시범 운영한다. 이 코스는 5·18 사적지인 민주광장에서 출발해 친숙하지만 잘 모르는 광주천의 잊힌 이야기를 듣고, 광주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직공원(전망타워)을 차례로 둘러보도록 구성됐다.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문학적으로 조명하는 인문학 콘서트가 광주에서 열린다. 조선대 재난인문학연구사업단은 19일 오후 5시 20분 동구 남동성당에서 ‘오월의 문학과 노래’를 주제로 인문학콘서트를 연다. 콘서트는 5·18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소설가 공선옥의 강연으로 시작된다. 소설집 ‘은주의 영화’로 2020년 5·18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공선옥은 ‘오월 이후의 오월’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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