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모르고 전임비 지급…정부, 가짜 노조 전임자와의 전쟁 선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5일 1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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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고발 증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3.3.8 뉴스1
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고발 증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3.3.8 뉴스1
정부가 건설노조의 불법 탈법 행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가운데 ‘노동조합 전임비’(이하 ‘노조 전임비’)가 도마에 올랐다. 노조 전임비는 위원장 지부장 등과 같은 노조 전임자가 조합원의 처우개선 협상 등과 같은 노조업무를 수행하는 시간에 대해 제공하는 급여다.

그런데 건설노조의 노조 전임비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서 1개 공사현장에서 10개 노조가 전임비를 받아갔고, 일부 현장에서는 전임비로 한 달에 170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이 1년 여 동안 10개 현장에서 동시에 매월 370만 원을 타가는 일도 발생했다.

정부는 이러한 건설 노조 전임자 가운데 제대로 된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전임비만 받아가는 이른바 ‘가짜 노조 전임자’는 현장에서 퇴출시킬 방침이다.

국토교통부는 15일(오늘) 이런 내용의 ‘건설현장 불법행위 피해사례 일제조사 결과’ 가운데 노조 전임비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발표 내용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올해 1월 13일까지 접수된 피해사례 가운데 전임비 관련 567건을 분석한 결과이다.

● 노조 전임비로 1억 6400만 원 타가기도

국토부에 따르면 노조 전임자의 월 평균 수수액은 140만 원이었다. 또 월 최대 1700만 원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특히 전임비를 가장 많은 A씨는 2018년 11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49개월 간 20개 현장에서 무려 1억 6400만 원을 챙겼다. 4년이 넘는 동안 매월 335만 원을 받은 셈이다.

한 사람이 동일 기간에 여러 현장에서 전임비를 받은 사례도 적잖았다. 복수 현장에서 전임비를 받은 노조 전임자 1인 당 평균 현장 수는 2.5개였다. 전임비를 가장 많이 받은 A씨는 같은 기간 무려 10개 현장에서 전임비를 챙겼다.

복수 현장에서 전임비를 챙긴 노조 전임자의 월 평균 전임비는 260만 원이었고, 최대 810만 원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복수 현장에서 전임비를 챙긴 기간은 평균 6.6개월이었다.

국토부는 이런 전임비 지급 과정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현장에서 일하지도 않고, 조합원의 처우개선 활동도 하지 않는 노조원(노조 전임자)에게 회사가 임금을 부담할 필요는 없다”며 “‘가짜 근로자’ ‘가짜 노조 전임자’를 현장에서 퇴출시키겠다”고 선언했다.

● 깜깜이 노조 전임비 지급 방식도 문제

국토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와 함께 건설현장 내 노조 전임자가 ‘노동조합법’에서 노조 전임비가 정한 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전임비를 결정하는 근거가 되는 ‘유급 근로시간 면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다.

유급 근로시간 면제는 사업장별 조합원 수에 따라 정해진다. 그런데 현재는 노조에서 조합원 수와 활동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대신 노조가 정하는 대로 회사(사용자)가 전임비를 지급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그 결과 1개 현장의 1개 업체가 10개 노조에 전임비를 지급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노조가 전임자를 지정하고 계좌번호와 금액을 통보하면 건설사는 해당자의 얼굴도 모르고, 돈만 입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4대 보험 등을 처리한다. 한마디로 깜깜이로 전임비와 부대비용을 지급하는 셈이다.

원 장관은 이와 관련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실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원 장관에 따르면 건설노조는 건설 현장이 개설되면 원청·하청업체에 작업반을 구성해 일방 통보한다. 이 작업반의 팀·반장은 출근 도장만 찍고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런 팀·반장 가운데 망치 한번 잡지 않고 최고 단가 일당을 받는데, 한 달에 1000만 원 이상 챙겨가는 억대 연봉자도 있다.

원 장관은 “이러한 귀족 반장, 가짜근로자가 챙겨가는 돈은 현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진짜 근로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라며 “이들이 챙겨간 돈은 건설 원가에 반영되어 아파트의 경우 분양받은 일반 국민이 모두 떠안게 된다”고 주장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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