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에도 구속 130km 씽씽…레전드 왼손투수 구대성이 말하는 늙지 않는 비결은?[이헌재의 인생홈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5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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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세의 구대성 감독이 브리즈번과의 경기에서 역투하는 모습. 마운드 위에서의 매서운 눈매나 독특한 투구 폼은 전성기 시절 그대로다. 질롱코리아 제공
54세의 구대성 감독이 브리즈번과의 경기에서 역투하는 모습. 마운드 위에서의 매서운 눈매나 독특한 투구 폼은 전성기 시절 그대로다. 질롱코리아 제공


2019년 1월 21일자 본보 A24면엔 ‘50세에 직접 등판…싱싱投 던진 구대성 감독’이라는 제목의 화제성 기사가 실렸다.

당시 호주프로야구리그(ABL) 질롱코리아 사령탑이던 구대성 감독이 브리즈번과의 안방경기에서 직접 등판한 것이다. 1969년생인 구 감독의 당시 나이는 50살이었다. 무려 1457일만의 실전 경기 등판이었지만 몸을 틀어 던지는 독특한 투수 폼이나 구위는 여전했다. 여유 있는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1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막은 그는 “오랜만에 던졌더니 너무 힘들었다. 역시 나이 먹고 던지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팬 서비스 차원이었다. 이제 더 마운드에 서는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로부터 4년 후. 구 감독은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지난 달 19일 ABL 애들레이드와의 경기에서 다시 깜짝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또 한 번의 팬 서비스라고 하기엔 너무 잘 던졌다. 8회말 마운드에 오른 그는 1이닝 동안 2개의 탈삼진을 곁들여 무실점으로 막았다. 직구 최고 구속은 120km대 초반에 머물렀지만 변화구와 제구력을 앞세워 아들뻘 되는 호주 타자들의 방망이를 연신 돌려 세웠다. 그는 이후에도 2경기에 더 나서서 3경기 2와 3분의1이닝 비자책 2실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54세 현역 투수 구대성의 모습은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미국프로야구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영원히 던질지도 모를 선수”라는 제목으로 구대성의 활약상을 재조명했다.

현역 은퇴 후 호주에 정착한 구대성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는 호주 16세 이하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호주 현지 관계자들과 찍은 기념 사진. 구대성 감독 제공
현역 은퇴 후 호주에 정착한 구대성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는 호주 16세 이하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호주 현지 관계자들과 찍은 기념 사진. 구대성 감독 제공


한국 프로야구 한화에서 은퇴한 뒤 호주 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구 감독과 모처럼 연락이 닿았다. 깜짝 등판에 대해 묻자 그는 “처음부터 던지려고 간 건 아니었다. 원래는 시구자 자격으로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질롱코리아 이병규 감독(삼성 수석코치)이 ‘몸이 괜찮으면 한 번 던져보라’고 해서 던지게 됐다”고 했다. 유니폼도 없던 그는 덩치가 비슷한 서준원(23·롯데)의 유니폼을 빌려 입고 마운드에 올랐다.

구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레전드 왼손 투수다. 1993년 빙그레(현 한화)에 입단해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67승 71패 214세이브 평균자책점 2.85를 기록했다.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고 1996년에는 18승과 24세이브을 따냈다. 이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를 거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뉴욕 메츠에도 진출했다. 이후 호주에 정착한 뒤에 ABL 시드니에서 뛰었다.

국제대회에서는 ‘일본 킬러’로 유명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결정전에서는 9회까지 155개의 공을 혼자 던지며 완투승을 거뒀다. 당시 일본의 상대 투수는 ‘괴물’로 불렸던 마쓰자카 다이스케(43·은퇴)로 무려 160개의 공을 던졌다. 두 투수의 혈투는 국제대회 야구 대회의 잊을 수 없는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9이닝 완투승을 거둔 뒤 두 팔을 벌려 환호하는 구대성 감독.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9이닝 완투승을 거둔 뒤 두 팔을 벌려 환호하는 구대성 감독.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제 아무리 현역 시절 레전드였다 해도 어떻게 50대 중반의 나이까지 스태미나를 유지할 수 있을까.

구 감독이 꼽은 건강 비결은 소식(小食)과 바른 식생활이다. 그는 하루 두 끼를 먹는다고 했다. 아침은 야채와 요쿠르트, 견과류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오후 5시쯤 일찍 한다고. 따로 음식을 가리진 않는다. 한식, 양식, 중식 등 그날그날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 다만 소금 섭취는 최소화한다. 한식을 예로 들면 소금 간을 하는 대신 사과나 배 등 과일로 양념을 한 음식을 먹는다. 그는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보니 조금만 과식을 해도 금방 살이 찌더라. 그래서 식사 횟수를 줄이고 저녁을 일찍 먹는 쪽으로 바꿨다. 체중 유지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자극적인 음식을 피한다. 단 음식, 짠 음식, 매운 음식 등을 멀리하고 최대한 싱겁게 먹으려고 한다.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느끼는 게 근육이 예전보다 훨씬 빨리 빠진다는 것이다. 근육을 지키려면 탄수화물 보다는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 선수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많이 먹었다면 지금은 최대한 적게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운동의 끈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구대성은 호주 16세 이하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그는 “어린 선수들을 잘 가르치려면 아무래도 나부터가 몸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 동안 쉬었던 피칭을 1년 정도 전부터 다시 시작했다. 연습 때는 130km 정도의 공을 던졌다”고 했다.

선수 때처럼 많은 양의 훈련을 소화하는 건 아니다. 따로 파트너가 없을 때는 혼자서 운동을 한다. 집 근처에 큰 공원이 2개 있고, 야구장도 있어서 환경은 무척 좋은 편이다.

그는 “오전 11시경 운동장에 나가서 기본적인 체조를 하고 혼자서 공을 던진다. 70m 정도의 장거리도 던지고 30m 거리의 피칭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직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변화구를 섞어서 불펜 피칭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빼놓지 않고 하는 게 바로 달리기다.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달리기를 번갈아서 한다. 달리기가 지겨울 때는 자전거를 타고 30~40km 정도 동네를 돈다.

구 감독은 “제가 볼 때 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자기만의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만큼은 반드시 지키려 한다. 그게 달리기여도 좋고, 팔굽혀펴기라도 좋다. 어떤 식으로든 운동의 습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애완견과 산책하는 구대성 감독. 마운드를 벗어나면 영락없이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다. 구대성 감독 제공
애완견과 산책하는 구대성 감독. 마운드를 벗어나면 영락없이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다. 구대성 감독 제공


그는 50대를 살아가는 팬들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구 감독은 “예전과 달리 시대가 많이 변했다. 예전 50~60대는 은퇴를 생각할 나이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건강해야 한다. 모두 열심히 운동하시고 건강을 지키면 남은 100세 인생에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던질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준비할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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