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해밀톤호텔 주점 테라스-부스 불법증축… ‘병목’ 가중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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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참사 당시 대피할 공간 줄어
구청, 작년 5월 테라스 시정요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진 지난달 29일 오후 6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인파가 몰려 있다. 특히 거리 오른편의 해밀톤호텔 주점에 설치된 불법 중축물과 왼편의 불법 행사 부스로 길이 좁아지면서 통행에 지장을 빚고 있다. SNS 캡쳐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진 지난달 29일 오후 6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인파가 몰려 있다. 특히 거리 오른편의 해밀톤호텔 주점에 설치된 불법 중축물과 왼편의 불법 행사 부스로 길이 좁아지면서 통행에 지장을 빚고 있다. SNS 캡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 위치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주점이 세계음식문화거리에 테라스를 무단 증축했으며, 행사를 앞두고 임시 부스까지 불법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시설물 탓에 거리 너비가 대폭 좁아지면서, 참사 당시 현장을 벗어나려는 시민들이 대피할 때 병목 현상을 가중시킨 것이다.

31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해밀톤호텔 일반건축물대장을 확인한 결과 호텔 본관 북측에 있는 A주점의 테라스는 불법 증축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테라스는 폭 1m, 길이 17m가량이다. 이 때문에 참사 당시 대피로 역할을 했던 호텔 북측 세계음식문화거리는 폭이 약 5m에서 약 4m로 1m가량 줄었다. 지난해 11월 용산구가 불법 증축을 단속하고 기록한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이 테라스는 면적이 17.4m²로 경량철골 및 유리로 제작됐다.

참사 당일 해밀톤호텔 맞은편 별관 주점에서도 핼러윈을 맞이해 이 테라스와 비슷한 폭(약 1m)의 행사 부스를 세계음식문화거리 반대편에 무단 설치했다. 이 때문에 세계음식문화거리 일부 구간은 폭이 약 3m까지 줄었다. 이 테라스와 부스는 이번 참사가 발생한 호텔 서측 골목과 직선거리로 5m도 채 떨어져 있지 않다.

불법증축 건물 앞은 3m ‘병목’… 돌아갈 길도 꽉 막혔다


호텔 불법증축 ‘통행 병목’
길이 17m-폭 1m 테라스 무단증축… 맞은편도 폭 1m 행사부스 무단설치
사고 난 호텔 옆 골목서 이동 어려워… 전문가 “도로 폭 통상 3.5m 넘어야”
용산구청 “호텔에 작년 5월 시정요구”… 해밀톤측 “임대 준 주점이 설치한 것”



전문가들은 이 불법 테라스 등으로 인해 병목현상이 발생한 탓에 참사 당시 사고를 피하려는 인파가 현장을 떠나기 힘들어졌고, 피해가 확대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테라스와 행사 부스 탓에 원래 폭이 약 5m인 세계음식문화거리는 일부 구간(5∼6m)에서 인파가 통행할 수 있는 폭이 3m 남짓에 불과했다. 테라스만 있는 11∼12m 구간은 통행 폭이 약 4m로 줄었다.
○ 좁아진 거리에 옴짝달싹 못 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게시된 참사 당일 사고 발생 직전 영상을 보면 세계음식문화거리에 들어찬 인파의 흐름은 이미 매우 느린 상태였다. 특히 불법 증축된 테라스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거리 폭이 좁아지며 행인들이 거의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앞사람 뒤통수와 맞닿을 정도로 붙어 있었고, 일부 행인은 인파에 짓눌리자 진행 방향이 아닌 옆 방향으로 몸을 돌린 채 간신히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음식문화거리로 사람들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인파의 압박은 더 심해졌다. 일부 행인들은 휘청거렸고, 몇몇은 테라스 기둥을 붙잡고 서 있거나 매달려 있었다.

이 때문에 참사가 발생한 직후 사고가 난 호텔 서쪽 골목에서 세계음식문화거리 쪽으로 대피하려던 이들은 대부분 인파에 갇혀 움직이지 못했다. 구조대원 등이 사고 현장으로 접근하는 것도 지체됐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보행자와 차량 모두 통행할 수 있는 거리 폭은 통상적으로 최소 3.5m 이상이어야 하지만, 불법 증축물과 설치 부스 탓에 사고 당시 통행 공간이 줄어 사람들이 대피할 수 없게 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호텔과 주변 건물의 튀어나온 건축물이 보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호텔과 주변 건물의 튀어나온 건축물이 보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건축주인 호텔 측이 시정 책임”
용산구청에 따르면 구청에선 지난해 5월경 호텔 뒤편에 테라스가 무단 증축된 것을 확인하고 호텔 측에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이후 시정되지 않자 6개월 뒤 강제이행금을 부과하고 건축물대장에 해당 내용을 기재했다. 구청 측은 “건축주인 호텔 측에 시정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테라스가 설치된 주점을 관리하는 해밀톤쇼핑몰 측은 구청에서 시정 조치를 전달받자마자 해당 내용을 테라스를 설치한 주점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쇼핑몰 측은 “주점에 임대를 내준 공간이고, 주점에서 테라스를 설치할 당시 우리에게 알린 바 없다”며 “시정 조치를 받자마자 주점에 통보했다”고 했다. 테라스 맞은편 건물에 설치된 행사 부스도 호텔 별관을 임차한 주점에서 설치했다고 한다. 취재팀은 해당 주점에 해명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에 호텔 쪽으로 세워져 있는 임시 벽도 골목길을 더 좁게 만든 원인으로 지적된다. 해당 벽은 해밀톤호텔이 무단 증축했다가 2016년 구청 지적을 받고 철거한 건물의 잔재다.
○ 분장사들로 통행 불편 겪기도
테라스와 행사 부스 외에도 사고 당일 이 거리 곳곳에는 인파 통행을 방해하는 시설물들이 적지 않았다. 참사 당일 이태원을 찾았던 이들은 거리 곳곳에 1만∼2만 원의 돈을 받고 핼러윈 분장을 해주는 이들이 설치한 이동식 탁자와 의자 등이 통행에 불편을 낳았다고 했다. 김모 씨(24)는 “인파들이 움직일 때 분장사들이 설치해 놓은 의자와 탁자에 부딪히는 경우가 잦았고,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이태원을 찾은 A 씨는 “사고가 발생했던 골목길에도 분장사가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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