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하정민]돌아온 룰라, 반으로 갈라진 브라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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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오른쪽)이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 룰라 전 대통령 트위터
다음 달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오른쪽)이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 룰라 전 대통령 트위터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까지 문맹이었고 금속 공장에서 일하던 열아홉엔 사고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스물여섯엔 임신 8개월인 첫 번째 부인이 간염에 걸려 태아와 같이 숨졌다.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겠다며 노동 운동에 투신했다. 달변을 앞세워 수십만 명의 노조원을 거느린 금속노조 위원장에 뽑혔고 의원 배지도 달았다. 2003년 건국 후 최초의 좌파 대통령에 올랐고 4년 후 연임에 성공했다.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호황이 이어지자 빈민층에게 현금을 주는 화끈한 복지 정책을 폈다.

2010년 퇴임 때 지지율이 80%를 넘었지만 자연인이 되자 집권 시절 비리 의혹이 속속 터졌다. 직접 고른 후임자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국가 재무제표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탄핵됐다. 보호막이 사라지자 뇌물수수 등으로 네 차례 기소됐고 580여 일간 옥에 갇혔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수사가 적법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곧바로 대선 재출마를 선언했다. 다음 달 2일 대선 1차 투표를 앞둔 현재 십여 명의 후보 중 지지율 1위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삶이다. 드라마로 쓴다면 작위적이고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12년 전 물러난 77세 노(老)정객이 중남미 최대 경제대국을 다시 뒤흔들 줄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그와 ‘브라질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 중 누가 1차 투표 혹은 다음 달 30일 결선 투표에서 승리할지 아직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승자가 누구건 국민 통합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브라질 사회가 극심하게 분열됐다는 사실이다.

두 진영 간 반목은 우려할 만하다. 올 7월에 이어 이달 9일에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자가 다툼 끝에 룰라 전 대통령의 지지자를 살해했다. 지지율에서 밀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전자투표 체계의 허점을 운운하며 불복 가능성을 심심찮게 내비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층이 2020년 미 대선 결과에 불복해 지난해 1월 미 의회에 난입한 수준의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거론한다.

보우소나루 측은 대법원이 수사 과정의 적법성을 문제 삼았을 뿐 룰라 전 대통령의 부패 혐의 자체가 벗겨진 건 아니며 그가 집권 중 국영 석유사 페트로브라스의 비자금으로 브라질은 물론이고 중남미 전역의 정치인을 돈으로 매수했다고 비판한다. 룰라의 재집권은 고질적 부정부패의 반복을 의미할 뿐이란 주장이다. 룰라 진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800만 명의 누적 감염자와 68만 명의 누적 사망자를 낳은 정권은 존재할 가치가 없으며 보우소나루 정권의 인종차별, 성소수자 및 외국인 혐오, 총기 소유 지지 등이 브라질을 더 위험하고 낙후된 곳으로 만들었다고 맞선다.

양측 갈등은 종교 및 문화 전쟁의 양상도 띠고 있다. 브라질은 한때 2억1500만 명 인구의 65%가 가톨릭인 세계 최대 가톨릭국가였지만 최근 오순절파 등 복음주의 개신교 종파가 급속히 세를 키우고 있다. 국가와 기존 가톨릭교회의 손이 미치지 못했던 빈민가에서 음식, 의료, 교육 등을 제공한 영향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19 이후 100만 명 이상의 브라질인이 개신교로 개종했으며 올 7월 기준 브라질의 가톨릭 인구가 인구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개신교도가 주류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층은 가톨릭 지지가 두터운 룰라 전 대통령이 과거 아프리카 전통 종교의식에 참여한 영상을 공유하며 그를 ‘미신 숭배자’라고 공격한다.

대립이 격화할수록 먹고사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세계 5위인 851만km²의 광대한 국토를 보유했고 철광석 목재 옥수수 콩 등 천연자원도 넘쳐나지만 국민의 13.1%는 아직도 하루 5.5달러 미만의 수입에 의존하는 절대빈곤 상태다. 소득 불평등의 척도인 지니계수 또한 0.534로 언제든 폭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0.5를 넘어섰다. 천연자원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주던 중국의 고도성장이 멈췄는데도 “재집권하면 첫 집권 때의 복지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룰라 전 대통령, 본인이 대통령인데 “투표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모두 이 난국을 타개할 만한 지도력을 갖춘 것 같진 않아 안타깝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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