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를 가장 잘 돌리려면?’…괴짜노벨상 받은 日 연구자의 호기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6일 14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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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수도꼭지에서 영감 얻어 6년간 연구
‘귀찮은 연구’ 평가에도 산업디자인 한우물 파
자전거 가방 의자 등 실생활품 개발하며 세계적 권위
“디자인 공학 친근하게 다가갈 계기 됐으면”

올해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마쓰자키 겐 지바공업대학 교수가 기념촬영을 하면서 부상으로 받은 10조 짐바브웨 달러와 기념품 제작도를 들고 있다. 짐바브웨 달러는 초인플레이션 여파로 화폐 가치가 사실상 없다.  아사히신문 제공
올해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마쓰자키 겐 지바공업대학 교수가 기념촬영을 하면서 부상으로 받은 10조 짐바브웨 달러와 기념품 제작도를 들고 있다. 짐바브웨 달러는 초인플레이션 여파로 화폐 가치가 사실상 없다. 아사히신문 제공


매년 노벨상 발표에 앞서 발표되며 ‘괴짜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그(Ig)노벨상의 올해 수상자로 일본의 한 산업디자인 공학자가 선정됐다. 이그노벨상은 미국의 ‘기발한 연구연보(AIR)'에서 제정한 상으로, 웃기고 황당하지만 무릎을 칠 만한 기발한 연구에 주어지는 상이다.

16일 발표된 올해 이그노벨상의 주인공은 일본 지바공업대학 디자인학 교수인 마쓰자키 겐(松崎元·50). 사람들이 수도꼭지, 문고리 등의 지름, 모양에 따라 어떤 습관으로 돌릴지를 연구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런 것도 연구할 감이 되나’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그의 연구를 들여다보면 일반인에게 낯선 디자인 공학이라는 학문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걸 실감하게 한다.
● ‘사람들은 수도꼭지를 어떻게 돌릴까’
이번에 수상한 연구는 마쓰자키 교수가 대학원생 시절인 20여 년 전에 했던 연구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수도꼭지에서 우연히 영감을 얻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모양도, 위치도 제각각이다. 수도꼭지를 만드는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제작했을까. 사람들은 어떻게 꼭지를 돌릴까.’ 디자인 공학도로서 흥미를 느꼈다.

남녀 32명을 대상으로 실험에 착수했다. 지름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고리를 돌리는지가 연구의 핵심이었다. 실험 결과 지름이 1cm 미만이면 엄지와 검지 2개 손가락으로, 1.1cm를 넘으면 3개 손가락으로, 지름 9cm 이상인 경우 모든 손가락을 사용해 고리를 돌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름이 4.5cm를 넘어가면 사용하는 손가락이 4개에서 5개가 된다는 발견도 했다. 무의식적 행동의 패턴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였다.

디지털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대, 비디오 캠코더로 실험 대상자가 원통 등을 잡은 모습을 일일이 촬영해 영상을 편집한 뒤 사진을 붙여 편집했다. 6년에 걸쳐 3개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깊이 있게 연구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참 귀찮은 연구를 하셨네요”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편리하게 쓸 수 있게 물건을 디자인할지, 사람과 물건의 관계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 파고드는 연구는 그의 평생 과제가 됐다.
● 인간이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 디자인
마쓰자키 교수는 소속 대학에서 ‘생활공학 디자인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실 이름에 걸맞게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일상용품을 편하게 쓸 수 있게 디자인하고 연구한다.

그의 논문 제목을 보면 ‘연구를 위한 연구’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령자의 건강에 맞춘 자전거 개발 연구’ ‘신체 기능성을 고려한 배낭 개발’ ‘여행용 가방의 핸들 개발’ ‘유아 및 노인을 위한 놀이용 블록의 개발’... 공저로 참여한 ‘고교용 인테리어 생산’은 일본 문부과학성이 공식 채택해 일본 고교용 의자, 책상 등을 생산할 때 매뉴얼로 쓴다.

배게, 이불, 스카치테이프 절단기 등의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개발한 사무용 의자로 세계적 권위의 산업디자인 상인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도 받았다.

일본 가구업체 '이토키'사가 제작한 사무용 의자 '레오니스'. 마쓰자키 교수가 디자인에 참여해 2021년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토키 제공
일본 가구업체 '이토키'사가 제작한 사무용 의자 '레오니스'. 마쓰자키 교수가 디자인에 참여해 2021년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토키 제공

● “디자인공학,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마쓰자키 교수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수상을 알리는 메일을 받았을 때 사기 메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시절 진지하게 했던 연구다. 누군가를 웃기게 할 목적은 추호도 없었다. “연구자로서는 솔직히 복잡한 기분”이라고 소감을 털어놨다.

하지만 이그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주목받은 것이 결코 싫지 않다. 그는 “산업디자인이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계기가 돼 기쁘다. 디자인 공학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사회에 도움을 주는 연구 분야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다른 연구자들도 주목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쓰자키 교수 수상으로 일본은 16년 연속 이그노벨상을 받게 됐다. 이그노벨상을 운영하는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일본에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와 이를 끈기 있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이 상을 받는 사람이 많다는 건 혁신을 창출하는 모범이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상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으로 열렸다. 상금으로는 초(超)인플레이션으로 사실상 가치가 사라진 10조 짐바브웨 달러가, 부상으로는 기념품 설계도가 주어졌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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