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부동산 계약금 수금 알바인줄 알고…” 보이스피싱 가담한 청년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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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특별 자수-신고 기간’에 수금원-현금인출책 등 101명 자수
자수자 절반 이상은 2030 청년층… 시민제보 등 신고로 61명 붙잡혀
“내달말까지 해외체류자 자수기간”

구인·구직 사이트에 일자리를 구한다는 글을 올린 20대 A 씨는 올 7월 “부동산 계약금을 대신 받아 송금하면 보수를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A 씨는 전화 지시대로 2명으로부터 약 5000만 원을 받아 다른 계좌로 송금했다. 지인으로부터 “하는 일이 아무래도 보이스피싱 같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난 그는 경찰에 자수했다. A 씨에게 돈을 건넨 이들은 사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자였다.

30대 B 씨도 올 4월 통신기기 납품 업체라면서 ‘월 200만 원 보장 단기 재택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를 낸 곳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이후 직원으로부터 스마트폰 수십 대, 유심칩 등을 전달받은 뒤 지시에 따라 약 한 달간 집에서 일했다.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조직의 ‘070’ 발신번호를 ‘010’으로 변환하는 일을 맡았던 B 씨는 최근 경찰에 자수하면서 “5G 광대역 테스트라고 해 그런 줄로만 알았다”고 하소연했다.

2030 청년층이 자신도 모른 채 보이스피싱에 가담했다가 뒤늦게 자수하거나 경찰에 잡히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경찰청은 전화금융사기 특별 자수·신고 기간이었던 6월 8일∼8월 7일 자수와 신고로 총 164명을 붙잡아 12명을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이 기간 범행을 자수한 피의자는 총 101명이었는데 2030 청년층이 55명(54.4%)으로 전체의 과반을 차지했다. 직업별로는 무직자(61명)가 절반 이상이었고 대학생(17명)이 뒤를 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에 속아 범행 가담 사실조차 모르다 뒤늦게 알아차린 피의자가 늘고 있다. 자수할 경우 불구속으로 수사하면서 검찰과 협의해 구형에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청년들은 대면수금원이나 현금인출책으로 조직 몸통이 아니라 말단에서 손발 역할을 한 경우가 많았다. 자수·신고를 통해 검거된 이들(총 164명) 중 가장 많은 수가 직접 피해자를 만나 돈을 받는 대면수금원(128명)이었다. 이어 현금 인출책(15명), 대포계좌 명의자(9명), 대포폰 명의자(5명), 발신번호 조작 가담자(3명) 순이었다.

검거된 이들 중에는 중국에 건너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한 뒤 전화를 걸며 범행을 하다 친모로부터 수배 및 여권 무효화 사실을 전해 듣고 자수한 청년도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챗’으로 은행 직원을 사칭해 약 3000만 원을 가로챈 국내 거주 중국인 유학생이 자수하기도 했다.

자수 대신 신고로 붙잡힌 이는 61명이었는데 신고자는 택시기사 등 시민 제보가 30건으로 가장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에 사용된 계좌를 추적해 동결하고 범죄수익이나 수익을 처분해 얻은 재산까지 몰수 보전해 피해금 회복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은 해외 체류 중인 이들을 대상으로 ‘해외 특별 자수·신고기간’도 10월 말까지 운영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보이스피싱#부동산 계약금 수금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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