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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단독]‘모유은행’ 키운다, 정부 내년 1억 첫지원

입력 2022-08-19 03:00업데이트 2022-08-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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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영역서 관리 시범사업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모자보건센터 내 모유은행에 있는 기증 모유 냉동고.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올해 5월 김모 씨(40)는 임신 25주차에 체중 940g, 730g인 이른둥이(미숙아) 쌍둥이 남매를 출산했다. 김 씨는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지만 출산 후 약 50일 동안 분유를 먹여야 했다. 김 씨가 면역력 저하와 연관된 바이러스 보균자라서, 두 아이가 일정 체중이 될 때까지는 모유를 먹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는데, 모유를 먹이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엄마의 모유를 먹지 못하는 이른둥이들이 ‘모유은행’을 통해 타인의 모유를 기증받는 방안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처음으로 모유은행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첫 정부 지원으로 모유은행 활성화가 기대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모유 기증도 ‘공공의료’ 영역으로




보건복지부는 내년 상반기(1~6월) 중 서울 강동경희대병원에 최소 1억 원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18일 밝혔다. ‘모유은행’이란 건강한 여성으로부터 모유를 기증받아 살균 등의 공정을 거친 뒤 이른둥이에게 제공하는 기관이다.

현재 국내 모유은행은 강동경희대병원이 운영하는 1곳뿐이다. 지금은 수혜자가 모유 50cc당 3360원을 부담하는데, 시범사업이 진행되면 1년 동안 이 비용 역시 정부가 지원한다. 복지부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갖춘 대형병원 중 모유은행 운영 의사가 있는 곳에도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가 모유은행을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산 등의 영향으로 전체 출생아 중 이른둥이 비율이 증가하는 만큼, 모유 기증을 ‘공공의료’ 영역에서 책임지려는 움직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저체중아(체중 2.5kg 미만) 비율은 2010년 5.0%에서 2020년 6.7%로, 조산아(임신기간 37주 미만) 비율은 같은 기간 5.8%에서 8.5%로 늘었다. 독일, 프랑스 등 해외 주요 국가들도 정부 주도로 모유 기증을 관리하고 있다.

● 조산 스트레스에 수유 어려운 이른둥이 산모

의료계는 모유은행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했다. 신생아에게 영양학적으로 엄마의 모유, 타인의 모유, 분유 순으로 이롭다는 것은 학계의 중론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생후 6개월까지 모유수유를 권장한다. 이우령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모유수유의학회장)는 “‘모유냐 분유냐’는 전적으로 부모의 선택으로서 존중받아야 하지만, 모유가 분유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분명히 입증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른둥이에게는 모유의 필요성이 더 크다. 신손문 인제대 부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모유는 이른둥이에게 치명적인 괴사성 장염, 패혈증 등의 발생 위험을 낮추기 때문에 생존율 향상에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둥이 산모 중에는 모유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조산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고,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입원한 아이와 떨어져있을 수밖에 없어 모유가 충분히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 26주차에 체중 1.04kg인 딸을 출산한 장모 씨(27)도 “아이의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먹는 양이 많아지는데, 모유량은 아이가 먹는 양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 국내 유일 모유은행은 매년 적자

지난해 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이른둥이에게 필요한 만큼의 기증 모유가 충분하게 공급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국 77개 신생아 집중치료실 의료진의 93.4%가 ‘수요만큼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그 원인으로 ‘모유은행이 부족해 기증모유를 공급받기 어려움(64.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 같은 의료현장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내에서 모유은행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동경희대병원도 모유은행을 운영하면서 매년 1억 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모유은행장을 맡고 있는 정성훈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민간병원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모유병원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했다.

● “기증 모유 안정성 확보해야”

이른둥이 부모들은 무엇보다 기증 모유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임신 33주차에 체중 1.5kg인 딸을 출산한 A 씨는 “기증 모유를 누가, 어떻게 유축했는지 불투명하다면 아이에게 먹이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하고 관련 법령도 정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유량 확보도 모유은행 활성화의 관건이다. 2017년 복지부가 산모 약 1400명을 조사한 결과 35%가 ‘모유가 충분하면 기증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박문성 아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신생아학회장)는 “기증 의향이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게끔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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