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담대한 제안이 ‘MB 2.0’ 넘어서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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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아쉬우면 손 벌릴 것이란 생각은 곤란
대화 못 이끄는 생색내기는 관리실패 부른다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주민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지원할 방침입니다.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북한 측과 협의해 나갈 예정입니다.’

윤 대통령 취임 사흘 만인 5월 13일 나온 대통령실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은 느닷없었다. 전날 북한은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공개하고 단거리미사일 무력시위도 벌였다. 그런 북한에 백신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는 남북 간에 뭔가 긴박한 물밑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나아가 긴장 국면에 뜻밖의 반전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낳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의 시간은 잠시였다. 뒤이어 나온 설명은 아직 북한에서 어떤 연락이 온 것도, 우리가 어떤 제안을 한 것도 아닌 원론적인 입장을 정리한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 정부의 코로나 지원 제안은 실무접촉을 갖자는 우리 측 통지문에 대해 북한이 끝내 접수 여부조차 밝히지 않으면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담대한 계획’이 조만간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세부 내용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그 기조나 방향을 정립해 가는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지난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단계별로 제공할 수 있는 대북 경제협력 및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선 ‘경제 지원뿐 아니라 북한의 안보 우려까지 고려’ ‘선(先)비핵화 또는 빅딜식 해결이 아닌 단계적 동시적 이행’이 주요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핵화 정책의 진화와 발전을 도모’한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새 정부 대북 기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부 내에선 어떤 대단한 아이디어가 논의되는지 모르지만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미국도 그간 대북 협상 과정에서 밝혀온 해결 방식들이다. 그러니 새 정부가 이제 공부를 좀 해보니 특별한 길은 없음을 깨달았다고 실토한 것으로 읽힐 뿐이다.

권 장관은 “북한이 핵을 더는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준의 담대한 내용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그 내용은 둘째 치고 ‘담대한 계획’이란 용어 자체에 북한이 아쉬워지면 손을 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권 장관은 그제 국회 답변에서 이런 말도 했다. “북한이 얘기하는 ‘안보 우려’가 허구의 것이라고 보지만, 그래도 북한이 주장하는 부분을 다뤄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새 정부 대북정책이 이명박(MB) 정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MB는 누구 못지않게 대북 제안에 열심이었다. 8·15 광복절 등 때마다 ‘비핵 개방 3000’ 구상을 가다듬은 제안을 내놓았다. 북핵 폐기와 안전보장, 경제지원을 일괄 타결하자는 ‘그랜드 바겐’도 천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몇 차례 북한과의 비밀접촉이 이뤄졌음에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지 못했고, 천안함과 연평도로 대표되는 북한 도발과 대북 관리 실패로 기억될 뿐이다.

아무리 담대한 계획도 북한이 외면하는 한 생색내기용 제안이 될 수밖에 없다. 거창한 이름 아래 일단 던져놓고 보자는 식의 이벤트성 제안은 또 다른 관리의 실패를 낳을 수도 있다. 북한이 대형 핵 도발을 위협하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북한을 어떻게 상대하면서 충동을 제어할 것이냐는 현실적 전략과 접근법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담대한 제안#관리 실패#mb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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