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국산화는 국가 기초체력 다지기… 반드시 멀리봐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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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 명장 3인의 조언

“언제 어떤 소재나 부품이 부족할지 모릅니다. 모든 부품을 직접 생산할 수는 없겠지만, 특정 국가나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을 때 위험성이 커진다는 건 최근 몇 년간 모두가 경험하지 않았나요?”

삼성전기 정헌주 명장(52)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의 필요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삼성은 2019년 제조 관련 분야 장인을 인증하는 ‘삼성 기술명장’ 제도를 도입했다. 삼성그룹의 종합 전자부품 기업 삼성전기는 정 명장을 포함해 3명의 명장을 배출했다. 짧게는 25년, 길게는 35년까지 한 우물만 파온 명장들은 현장에서 소부장 국산화를 몸소 이끈 ‘숨은 주인공’들이다.

3명의 기술명장을 만나 소부장 국산화 전략을 물었다.

1997년 삼성전기에 입사한 뒤 25년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기술 외길을 걷고 있는 정 명장은 부품 및 장비 국산화의 산증인이다. MLCC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반도체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핵심 부품이다. 1mm 이하 크기인 MLCC는 가장 작은 크기의 전자부품 중 하나로 ‘전자산업의 쌀’이라고도 불린다. 크기는 작지만 내부에 500∼600층의 유전체와 전극을 겹겹이 쌓아야 하는 첨단기술과 설비 및 노하우가 필요하다.

1988년부터 MLCC 사업을 시작한 삼성전기는 일본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일본은 무라타 등 MLCC 세계 1위 기업을 보유한 것은 물론이고 핵심 장비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큰 장벽이었다.

정 명장은 2008년 유전체와 전극을 쌓는 핵심 장비인 ‘적층기’의 자체 제작에 도전했다. 당시 삼성전기 적층기 크기는 220mm로 경쟁사 장비(400mm)의 절반 수준이었다. 생산 능력과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기는 220mm 적층기를 수직으로 쌓아 생산능력을 2배로 늘리기로 했다. 배운 적도 없고 시도한 적도 없는 방법이었지만 밤낮 없이 3개월을 보내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440mm 사이즈 적층기를 자체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MLCC 설비 국산화 비율은 95% 이상이다.

전자부품과 전기 신호를 연결하는 기판 개발만 35년째 하고 있는 박운영 명장(52)도 일본 기업을 제치기 위해 기존에 없던 기술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 2000년대 초반 박 명장은 약품을 써서 반도체 기판의 일부 회로를 없애는 접촉식 설비 대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비접촉식 설비 구축에 성공했다. 협력사와 수개월에 걸쳐 연구를 진행한 결과였다.

박 명장은 이러한 경험을 살려 1조3000억 원이 투입되는 베트남 기판 제조라인 구축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에 구축하려는 서버용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기반은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설비 고장 예측 시스템 등의 과제도 진행하고 있다.

함동수 명장(52)은 1994년부터 삼성전기의 주요 포트폴리오 중 하나인 카메라 모듈의 핵심 기술인 ‘렌즈 사출’에 매달려 왔다. 2005년 중국, 2015년 베트남 등 주요 해외 거점에 생산시설이 들어설 때마다 함 명장이 앞장섰다. 설비, 금형 등 대부분의 기술을 맨땅에서 시작해야 했다. 이는 삼성전기의 부품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리는 동력이 됐다.

함 명장은 “삼성전기의 렌즈 사출 기술은 10년 단위로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며 “2025년에는 또다시 새로운 렌즈 기술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미래 자동차,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기기 등에 적합한 렌즈를 제작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함 명장은 소부장 국산화에 대해 사회가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눈앞의 결과만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당장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는 목표보다는 오랜 기간 다진 기본기가 결국 기초체력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삼성전기#명장#삼성 기술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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