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좋은 공간에는 꼭 의자가 있다[공간의 재발견/정성갑]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입력 2022-05-06 03:00업데이트 2022-05-06 03:29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코로나19로 폐쇄됐던 구립체육관이 약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도 가볍게 체육관으로 가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실로 오랜만인지라 속도는 안 나고 숨은 가쁘고. 몸이 그새 또 주저앉았음을 실감하고 왔다. 일상을 찾았다며 좋아라 했는데 아직은 아니었다. 로비에 있던 카페도, 매점도 버려지듯 잠겨 있었다. 빈 공간에 쓰다 남은 집기만 덩그러니 있었다. 바깥에 있던 나무 테이블과 의자도 보이지 않았다. 수영을 마친 후 매점에서 바나나우유를 하나 사 들고 가 그곳에서 휴대전화도 보고 좋은 날씨도 느끼며 한숨 돌리는 것이 작은 행복이었는데 더 이상 의자가 없으니 정원 바깥쪽에 있는 큼지막한 돌에 엉거주춤 앉아 있다가 곧 일어섰다.

날씨는 좋고 집으로 직진하는 것이 아쉬워 인왕산 둘레길로 산책 코스를 잡았다. 봄 속의 자연, 자연 속의 봄에는 어떤 것을 풀리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근간의 응어리와 걱정, 욕심이 용해되듯 스르르 풀어졌다. 특히 좋았던 것은 산책 코스 곳곳에 있던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속도를 포기하고 일단 마음 편히 앉고 나면 그 시점과 지점에서 새로운 풍경과 감각이 돋아난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애기똥풀이 눈에 더 꽉 차서 들어오고, 숲에 내려앉은 볕의 움직임도 한층 따사롭게 와 닿는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덥다’라고 혼잣말을 내뱉었는데 금세 ‘좋다’고 말을 바꾸는 것도 의자에 앉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몇 달 전 인터뷰로 만난 분과 의자 앉기 게임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의자를 빙 둘러 모아 놓고 의자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심판이 사인을 주면 민첩함을 발휘해 내 의자를 쟁취하는 게임. 언뜻 평범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파고들면 내 의자, 내 자리를 갖는 것에 대한 인류의 오랜 욕망과 본능, 집착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놀이를 영어로 하면 ‘Game of musical chairs’. 뮤지컬처럼 즐겁고 신나는 어감이지만 실제로는 생존 게임처럼 치열하고 잔인한 구석도 있다.

공원과 서점, 체육관과 산에 의자를 놓는 마음에 관해 생각한다. ‘어서 오세요. 와서 앉으세요’ 하는 환대가 떠오른다. 앉아 있을 의자가 많고, 그런 공공 공간이 충분한 사회는 의자를 놓는 것에 각박한 사회보다 한층 느긋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곳이 아닐지. 덴마크나 핀란드가 매년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는 데는 안팎으로 아름다운 의자와 ‘의자 디자이너’가 많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한 일상의 회복을 위해 다시, 더 많은 의자가 그 자리로 돌아오기를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