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함께 달리자, 무스타파”…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특별한 어린이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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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 141명 한국 초중고 입학
한글 익히며 새 희망 키워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한국 학교에 다닌 지 두 
달이 지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5400km가량 떨어진 머나먼 곳으로 온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 3일 경기 고양시 A초교에서 열린 운동회에서 무스타파 군(가운데)이 달리기 경기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으로 들어오고
 있다. 고양=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한국 학교에 다닌 지 두 달이 지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5400km가량 떨어진 머나먼 곳으로 온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 3일 경기 고양시 A초교에서 열린 운동회에서 무스타파 군(가운데)이 달리기 경기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으로 들어오고 있다. 고양=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안녕하세요, 저는 5학년 2반 무스타파입니다.”

3일 경기 고양시 A초등학교에서 만난 무스타파 군(11)이 외운 말을 까먹지 않으려는 듯 단숨에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곤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진한 눈썹 아래 밤색 눈동자가 반짝이는 무스타파는 같은 반 친구들보다는 조금 작고 마른 편이었다.

무스타파는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다. 교육부에 따르면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 중 초중고교 학생은 141명(초등학생 80명, 중학생 30명, 고등학생 31명). 이들이 한국 학교에 입학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경기도교육청은 동아일보 취재진에게 이들의 초등학교 생활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한국과 아프가니스탄은 거리만큼이나 문화 차이도 크지만 무스타파를 비롯한 아이들은 ‘우리 모두의 어린이’로 쑥쑥 자라고 있다.

이날 A초는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종목은 개인 달리기, 반 대항 계주, 피구 등 세 종목. 달리기를 좋아하고 또 잘한다는 무스타파는 모든 종목에 출전했다. 하지만 달리기 차례를 기다릴 땐 긴장한 듯 연신 양손을 비볐다. 드디어 무스타파가 출발선에 서자 벤치에서 5학년 2반 친구들이 “무스타파 이겨라”라고 목청껏 외쳤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무스타파는 친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바람처럼 튀어 나갔다. 함께 달린 2명의 친구보다 한발 앞서 결승선에 들어왔다. 달리기에 진지한 무스타파는 1등을 하고도 웃지 않았다. 벤치로 돌아오는 무스타파에게 같은 반 친구들은 ‘엄지 척’을 날렸다. 한 친구가 “하이파이브 하자”며 손을 내밀자 그제야 무스타파는 씨익 웃었다.

A초에는 인근 공단에 일자리를 얻은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자녀 5명이 다니고 있다. 이들은 한국으로 귀화한 게 아니고 체류 자격을 얻은 것이라 학교엔 모두 아프간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아프간 아이들, 한국어 수업 눈 초롱… 한국 친구들은 큰힘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
도서관서 그림책 등 쉬운 책 보며 한글 기초부터 천천히 배우고
종교적 이유로 힘든 급식도 적응… 교사 등 “한국 아이들과 같아”


“하나 되는 우리” 한국 학교에 다닌 지 2개월. 아직 낯설 수도 있으련만 마스크 너머 아이들의 미소가 해맑다. 
지난달 27일 경기 김포시 B초교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 5명이 ‘하나 되는 우리’라는 제목의 그림 아래서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포=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하나 되는 우리” 한국 학교에 다닌 지 2개월. 아직 낯설 수도 있으련만 마스크 너머 아이들의 미소가 해맑다. 지난달 27일 경기 김포시 B초교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 5명이 ‘하나 되는 우리’라는 제목의 그림 아래서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포=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한국 학교에 다닌 지 두 달, 아직 아프가니스탄 말이 더 익숙한 무스타파와 아이들은 1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놀다’ ‘먹다’ ‘가다’와 같은 간단한 동사와 ‘책상’ ‘선생님’ ‘케이크’ 같은 단어를 말하고 듣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네 단어 이상으로 이뤄진 문장을 이해하는 데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들을 도와주고 응원하는 건 바로 친구들이다. 5학년 2반 반장 구혜진 양(11)은 무스타파의 ‘한국어 과외 선생님’이다. 혜진이는 1주일에 두 번 정도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무스타파에게 읽어준다. 무스타파가 한국어를 빨리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스스로 시작한 일이다. 무스타파가 선생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는 휴대전화 번역기가 동원된다. 무스타파는 아버지가 통역관이라 영어를 곧잘 한다.

A초 도서관에 가면 친구들과 둘러앉아 책을 보는 3학년 하이더 군(9)과 베시타 양(9)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베시타는 특히 책을 좋아해 두 달 동안 책을 8권 빌렸다. 최근 읽은 책은 엄정순 작가의 ‘점이 모여 모여’라는 그림책. 점이 점점 모여 만들어진 하트 모양이 마지막 장을 장식해서 베시타는 이 책을 좋아한다. 이 학교 사서 교사는 “두 아이는 항상 반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온다. 한국 친구들이 ‘이 책도 읽어 봐’, ‘저 책은 봤어?’라면서 책을 챙겨주고 같이 읽는다”고 전했다.

1학년 어스러 양(7)은 한국 친구들과 함께 가나다라부터 배우고 있다. 국어 수업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3일에는 가, 캬, 꺄를 배웠다. 바른 자세로 책상 앞에 앉은 어스러는 TV 화면 속 교사의 입 모양을 유심히 보며 소리를 열심히 따라 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담임교사의 입 모양을 직접 보는 대신 모니터 속 입 모양을 보지만 배움의 즐거움은 다를 바 없다. 어스러는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다.

아프간 학생 8명이 입학한 경기 김포시 B초교 역시 지난달 27일 아프간 아이들을 위한 특별 한국어 수업이 진행됐다. 2학년 카이너트 양(8)은 함께 수업을 듣는 3학년 오빠들보다 빨리 학습지 풀이를 끝내고 번쩍 손을 들어 “선생님 다 했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한국 문화도 함께 배우고 있다. B초 5학년 베세트 군(11)은 사진을 찍을 때면 엄지와 검지를 교차하는 이른바 ‘케이(K) 하트’를 날린다. 다문화 학생 비율이 22%에 달하는 이 학교는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들이 한국 문화를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한국 전통음식 나눠 먹기, 우리 마을 탐방 등의 활동을 많이 한다.

학기 초 아프간 아이들을 힘들게 했던 급식은 이제 적응 단계에 들어섰다. 할랄 인증이 없는 고기를 금하는 이슬람 교리 때문에 한동안 아이들은 오후가 되면 배가 고파서 울곤 했다. A초는 아프간 학생용 메뉴를 따로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못 먹는 메뉴가 있는 날에는 김이나 과자 등을 따로 챙겨 준다.

아프간 아이들과 두 달 동안 함께 지낸 교사와 학생들은 이들이 한국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도형 B초 교사는 “아프간 아이들은 한국 문화를 거리낌 없이 흡수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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